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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Time To Do Nothing - But Trust -

믿기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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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Wilkerson
June 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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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왕으로 통치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망을 들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고 예언자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을 만나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입맞추었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사무엘상 10:1).

어떤 사람도 이보다 더 큰 칭찬을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실 이렇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사울 왕이여, 주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당신은 선택받은 그릇이요, 하나님께서 손수 지목하신 사람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곧장 사울에게 부르심을 성취하도록 새 마음으로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9-10절).

사울은 허풍쟁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이나 왕으로서의 지위를 과시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사울이 자신을 작게 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사무엘상 15:17). 그가 사무엘을 만난 후 집에 돌아와서 한 행동은 이 사실을 잘 말해줍니다. 사무엘과 만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그의 삼촌이 그를 세우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사무엘이 오직 마음에 분명한 목적이 있을 때에만 이야기를 한다는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조카에게 애원했습니다. "제발, 말좀 해다오. 사무엘이 네게 무어라고 말한든?"

그러나 성경은 "사무엘의 말하던 나라의 일은 고하지 아니하니라"(10:1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엄청난 뉴스거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마디도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알고도 비밀을 지킬 사람이 주변에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후 바로 사무엘은 온 나라를 미스바에 모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두 가지 목적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첫째로 그는 사람을 왕으로 삼기 원하고 하나님을 버린 데 대해 백성들을 책망하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통치자로 사울을 그들에게 선포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백성에게 사울을 소개하려고 할 때, 그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그를 찾기 위해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여행용 보따리 틈에 숨어있는 사울을 찾았다.

사울이 군중앞에 세워졌을 때 그는 왕에게 바랬던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외모도 출중한 미남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크더라"(10:23).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10:24).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리치며 동의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10:24).

왕이 된 첫 두 해 동안 사울은 자신이 경건하며 강력한 지도자임을 입증하였습니다. 암몬 족속이 길르앗 야베스를 침범해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울은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습니다"(11:6). 사울은 즉시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 삼십 삼만 명을 징집했습니다. 군사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허점 투성이의 이스라엘 군대는 아모리 족속을 물리쳤습니다. 그 후 사울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습니다(11:15).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거룩한 하나님의 왕은 모압과 암몬, 에돔, 아말렉, 심지어는 강력한 블레셋까지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을 치고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14:47-48).

이런 사람을 왕으로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울은 겸손하고 용맹스러웠으며, 빼어난 용모에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자였습니다. 성령에 따라 움직였으며 거룩한 선지자의 지시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사울은 신앙이 깊은 지도자의 좋은 본보기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기름부음 받은 바로 이 사람은 하나님을 반역한 가운데 죽습니다. 이 놀라운 승리를 얻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울은 기름부음을 잃어버리고, 그의 왕국마저 빼앗깁니다.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았으며, 성령의 음성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악한 영에 사로잡힘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무고한 자를 죽이려고 애쓰다 생을 마감합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제사장들을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렸으며, 죽기 바로 전날에는 신접한 여인의 가르침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이스라엘을 모든 적으로부터 승리로 이끈 바로 그 왕이 성난 미친 사람으로서 그의 인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한때 하나님의 종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으로서 참으로 슬픈 결말이지 않습니까? 사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 겸손했던 사람이 어떻게 광기와 파괴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까? 그가 넘어지기 시작했을 때 사울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만한 어떤 특별한 분기점은 없었습니까?


사무엘상 13장에 사울에게 극히
중요했던 순간이 나타납니다.


사울은 모든 믿는 성도들이 언젠가는 직면하게 되는 극히 중요한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위기 때에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서, 바로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지, 아니면 그때를 기다리지 못해서 우리 손으로 일을 처리할 것인지 결정하는 그 순간입니다.

사울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은 전쟁의 불운한 전조가 이스라엘에 가득했을 때 닥쳐왔습니다. 블레셋은 마병이 육 천에, 병거가 삼 만, 그리고 엄청난 수의 전사들이 최신 무기를 휘두르며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 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치 "해변의 모래알같이" 많아 보였습니다(사무엘상 13:5).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군이 가진 검이라곤 단 둘, 하나는 사울이 다른 하나는 그의 아들 요나단이 가진 것 뿐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창이나 조잡한 농기구를 임시변통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은 막강한 블레셋군이 진군해 오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13:6). 사울의 군대에 징병되지 않으려고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몰래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겁에 질려 탈영하였습니다. 암몬을 대파할 때의 사울의 군대 삼십 삼만이 갑자기 600명으로 확 줄어버렸습니다. 그마저도 두려움에 떠는 사람이 태반이었습니다(13:7). 이스라엘의 상황은 희망이 모두 사라진 듯했습니다.

일 주 전 사무엘은 사울에게 전투를 시작하지 말고 길갈에서 자기를 기다리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주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고 7일이 지난 후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7일이라는 기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사무엘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7일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한 주간의 기다림을 사울의 믿음에 대한 테스트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사무엘이 온다고 했던 칠 일째 되는 날이 왔지만 사무엘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병사들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사울 왕은 전투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를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사울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엄청난 블레셋 군대가 여러분에게로 진군해 오고 있습니다. 거대한 전차 바퀴 소리가 땅을 울립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여러분의 군대를 돌아보니 보이는 것이라곤 볼품 없는 무기를 들고 떨고있는 자들 뿐입니다. 모든 상황이 통제불능의 상태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이렇게 의문을 품으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울이 그냥 가만히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울이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사무엘이 사울을 처음 왕으로 임명할 때 사무엘은 이 말을 함축적으로 한 바 있었습니다. 예언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좇으면 좋으니라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12:14-15).

사무엘은 "주님께서는 우리의 왕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전략이나 무기나 수로 인해서가 아니라 기도의 능력을 믿고 주님에 대한 확신을 통해 하나님께 제사드림으로써 승리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온 세계가 알기 원하십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취한 태도는 무엇이었습니까? "사무엘이 도착하는 데 8일이 걸릴지라도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 위에 설 것이다. 죽든 살든 나는 그분의 명령에 복종할 것이다."라고 선포하며 굳건히 서 있었습니까? 아니오. 사울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는 상황이 자신을 압도하도록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방식으로 교묘하게 해석해버렸습니다. 그는 곁에 있던 제사장 아비야에게 사무엘 없이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마침내 사무엘이 도착했을 때 그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제단에서 제물이 타는 냄새를 맡았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물었습니다.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13:11). 사무엘 선지자의 질문은 사울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줍니다.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물은 것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소? 나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간단히 그리고 분명히 명한 바 있소. 당신은 결코 위험에 처해 있지 않았소. 그러나 당신은 이 문제를 당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만들고 말았소. 왕은 믿음이 아니라 두려움 가운데 이 일을 행했소. 당신은 주님께 엄청난 죄를 범했단 말이오."

사울은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기로"(13:11). 사울의 말에서 사울이 책임을 무엇에 돌리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그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당신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쟎소, 사무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비난은 사실 하나님을 겨냥한 것입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내가 더 이상 기다리기를 기대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그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늦으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줄곧 하나님은 길갈로 행하는 사무엘의 걸음 하나 하나를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하늘의 항법 시스템에 맞추어 놓으셔서 그의 도착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어 놓으셨습니다. 사무엘은 자정 1분전일지라도 7일째 되는 날 그곳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문제로 사울을 속이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무엘이 정시에 도착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사울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가혹해 보입니다. 사무엘은 말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13:13-14).

이런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울에게 조금의 여유도 허락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바란 것이라곤 주님을 위해 승리를 얻는 것 뿐 이었습니다. 여기서 사울의 순종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지옥의 모든 권세가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과 오직 자신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택함 받은 믿음의 백성들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몇 세대가 지나도 변치 않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여전히 주님의 백성이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출애굽기 23:21)는 명령을 지키는지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그것과 상관없이 주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 가운데 걸을 수 있습니다.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일지라도 두려움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을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합니다.

엄청난 수의 블레셋 군대가 사울을 압박해올 때, 하나님께서는 사실 바로 사울 곁에 서 계셨습니다. 주님은 굉음을 내며 구르는 전차와 빛을 반사하여 반짝이는 날카로운 무기들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군사들이 흩어져서 사울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 하나 하나를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이 겪는 위기의 세부사항 하나하나를 다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짓누르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보고 계십니다. 또한 여러분의 상황이 날마다 나빠지기만 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자는 결코 진정한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불어 주님은 당신이 전전긍긍하며 하는 모든 생각들, "이 빚을 어떻게 값을 수 있을까? … 내 결혼 생활은 완전 실패야.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군. … 어떻게 하면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을 수 있을까?" 등등을 모두 꿰뚫고 계십니다. 이런 상황가운데서도 주님의 명령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당황하지 말아라. 나보다 앞서 가지 말아라. 네가 할 일은 오직 기도뿐이다. 나를 의지하는 것뿐이다. 나는 나를 신뢰하는 자는 누구든지 영화롭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교회에 주셨던 말씀을 생각해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히브리서 11:6).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편 62:8).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시편 115:11).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

하나님은 오랫동안 우리를 참으셨습니다. 사실 그 분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이사야 41:21). 그 분은 아브라함에서부터 신약시대의 성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조상들이 자주 의심했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때로 그들은 "나는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라고 부르짖으며 차라리 죽기를 원했었습니다. 예수님도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물으시는 의문의 순간을 경험하셨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고통과 두려움, 절망을 느끼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거나 딸이나 아들이 이혼을 한다거나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등의 끔찍한 소식을 갑자기 듣게 되는 순간, 그런 순간에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위로케 하시며, 우리의 고통을 어루만지시며 마음을 평안케 하십니다.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는 7일 내내 두려움과 당혹감 가운데 떨었습니다. 동시에 7일 내내 성령님은 사울에게 결단하기를 요구하셨습니다. "사울아, 상황은 절망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너희 군대보다 훨씬 많은 암몬 족속과 싸웠을 때도 하나님은 너를 구해내시지 않았느냐? 자, 지금 너는 어떻게 하려느냐? 너와 네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느냐? 욥이 말했듯이, '하나님이 나를 죽이신다 할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하겠다'고 고백하겠느냐?"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울이 내릴 결정이 그 때부터의 그의 삶의 행로를 결정할 것임도 알고 계셨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그는 그런 위기를 더 많이 겪어야만 했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한 말에서 그의 결심을 간파해 볼 수 있습니다.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사무엘상 13:12). '부득이하여'(forced)라는 단어의 어원은 '스스로를 억제하다'(to restrain oneself)는 의미를 갖습니다. 사울은 "나는 복종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나는 되도록 불순종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억제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 스스로 행동해야만 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사울을 떠나셨으며 그를 왕으로 삼으신 약속을 취소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그 날부터 사울이 죽은 믿음을 드릴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울이 또 다른 순종시험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도리어 그는 계략과 교묘한 조작으로 끝을 맺을 것이 뻔했습니다.

불신은 사망에 이르게 하며 불신의 결과는 비극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련에서 구해낼 것임을 믿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시련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면 참혹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뿐입니다. 사울의 삶은 이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이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결정했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급격히 파멸로 치달았습니다. 사울의 불신앙은 모든 종류의 악의 세력에게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셈이 되었습니다.

사실 사울의 삶은 불신앙으로 인해 파멸로 치닫는 단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사울은 가장 극악한 율법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이 죄를 지은 후 그의 영혼은 강팍해지고 율법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이런 율법적인 영으로 인해 사울의 사랑하는 아들 요나단은 죽을 뻔 했습니다.

요나단과 그의 병기든 자는 블레셋의 기지에 기습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습으로 인해 엄청난 혼란에 빠진 블레셋 군은 자신들끼리 싸우며 서로를 죽였습니다. 그 소동이 하도 커서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사무엘상 14:15)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저리 흩어지는 것을 본 사울은 총공격을 가했습니다. 사울은 모든 군대에게 그 날 내내 싸움을 멈추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날이 다 지나갈 무렵,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어리석은 맹세를 했습니다. 만약 그 전쟁이 끝나기 전에 음식을 먹기 위해 싸움을 멈추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맹세였습니다.

요나단은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싸움을 벌였기 때문에 그 맹세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접전 중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휴식을 취하며 벌집에서 꿀을 약간 먹고 전쟁을 재개하는데 필요한 원기를 얻고자 했습니다.

그 날밤, 사울의 군사들은 더 이상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노획한 전리품인 동물들을 잡아먹기 위해 미친 듯이 불에 굽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법에 따르면 어떤 짐승이든지 먹기 전에 그 피를 따라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광경을 본 사울은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는 "너희가 하나님의 법을 업신여겼다!"고 날뛰었습니다. "백성이 고기를 피채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14:33).

사울은 스스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는 경찰관 노릇을 하는 율법주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침 사울 곁에 있던 제사장들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왕 사울이 거룩함을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를 칭찬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울은 이 사태 가운데서 가장 커다란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불순종했으며 극한 불신앙 가운데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하나님이여 고기를 피째 먹음으로써 율법을 범한 군사들을 도우소서"라고 선포했습니다.

그 날밤, 사울은 또 다른 바보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전투를 지속하기 위해 전 군대가 밤새도록 깨어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먼저 물어봐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다시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누군가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자가 누군가?"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14:39)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런 식의 자기 의는 모든 율법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셨다는 것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를 창조하려고 애를 씁니다. 결국 자기 자신의 죄는 도외시하고, 대신 다른 사람들의 실수나 죄를 부각시키는 체계를 만들고 맙니다.

사울은 누가 죄를 지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제비뽑기를 결정했습니다. 마지막 제비가 사울 자신과 요나단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아들에게로 몸을 돌리며 "나는 죄를 짓지 않았으니 네가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하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꿀을 먹은 것은 인정했지만 사울이 한 맹세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의 거룩함을 드려내려는 욕망에 자신이 마치 십자군의 기수나 된 것인 양 행동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통해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사울은 오직 자신의 거룩에 대한 열정을 증명코자 자신의 자식조차 죽였을 것입니다.

저는 불신앙이 모든 율법주의의 뿌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습니까? 불신은 하나님의 언약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도말 하시는 것, 우리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 주님을 두려워함을 우리 안에 일으키시는 것, 우리로 올바로 행하게 인도하시는 것, 우리에게 죄에 대한 미움을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게 합니다.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하지 않고 기다리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언약의 진실에서 멀어지면 우리는 율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없는 스스로 만든 자신의 엄격한 법칙과 형식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2. 사울은 모든 영적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사울의 불신은 그의 양심을 마비시켜서 죄에 대해 무디게 만들었습니다. 그도 한때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에 눈에는 "차고 넘치는 죄"도 죄로 안 보였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전멸시켜버리라는 명령에 대한 사울의 태도는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치고, 그 가족과 기르는 가축을 비롯하여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명했습니다. 사울은 사람과 동물을 막론하고 아무도 살려두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을 때 사울은 아각 왕을 승리의 트로피로 살려두었습니다. 또한 전리품 중 일부, 아말렉의 가축, 의류와 그 밖의 소유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따로 남겨두었습니다. 심지어 사울은 대담하게도 자신을 기리는 승전비까지 세웠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노골적으로 경시했습니다.

사무엘이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터는 마치 거대한 벼룩 시장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가축들을 매매하고, 새 옷을 입어보며, 바베큐 요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그 한 가운데 서있는 아각 왕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로 성큼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왕이시여, 지금 내게 들리는 이 염소 우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사울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 대답을 했습니다. "아, 백성들이 위대한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좀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모두 진멸시켜 버렸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앞으로 놀라운 부흥을 맞이하겠지요!"

사무엘은 크게 울며 사울에게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사무엘상 15:19). 사울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20절).

사울은 어찌 그리 눈 멀 수 있었을까요? 그는 자신이 불순종한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명백한 증거를 앞에 두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그 자신의 거짓말을 믿었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입니다. 그는 모든 분별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는 사울과 꼭 같습니다. 그들은 모든 불순종에 빠져들어 마음대로 하고서는 곧장 교회를 달려가 "주님,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기 제 찬양의 제사를 받아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신자들은 잠언에 묘사되어 있는 여인과 같은 자들입니다.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잠언 30:20).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상황에 빠져들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때 시작됩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에 의존하여 자신의 의를 스스로 세우려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으며 믿음이 흔들립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일을 행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모든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그들의 양심은 완전히 화인을 맞게 됩니다. 마침내 그들은 자기 죄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것이 미신과 이단의 씨앗이 뿌리내리게 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마술을 행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야기한 장면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사무엘상 15:23).


3.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양심이 화인을 맞게 되면
질투의 영을 대적하여 방어할 방법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사무엘상 16:14). 글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악령을 사울에게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단지 마땅히 일어날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을 뿐입니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계속되는 불신에 매인 사람이 이 지점, 즉 율법주의에 의존하고, 분별력을 잃으며, 양심에 화인을 맞는 상태에 다다르게 될 때 그런 사람은 침략해오는 질투와 시기의 영을 막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이 두 개의 영은 침입하는 모든 영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습니다.

이때쯤, 사울은 사실 보는 사람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마귀에 사로잡혀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의 종들은 너무나 겁이 나서 사울의 영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윗에게 하프를 연주하며 시편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물론 다윗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기름부음 받은 음악은 사울의 영혼에 평안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왕은 너무나 고마워서 다윗을 군대장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전장에서 용기와 뛰어난 전술을 보여주자 사울은 비정상적으로 점점 그를 질투하게 되었습니다. 질투는 성도를 끔찍한 존재로 바꾸어 놓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아무도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질투심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참소합니다. 그런 죄는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데도 말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을 피해자로 여깁니다. 그런 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항상 자기를 질투하고 있으며 언제나 자기에 관해 수근거리고 끊임없이 자기를 괴롭히고 있다고 믿습니다. 질투는 단지 사람들이 겪는 단계 중 하나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옥의 영입니다. 질투는 경건한 사람들에게서 모든 하늘에 속한 목적을 앗아갑니다. 질투는 자기 자신의 작고, 육적인 전쟁에 집중하도록 만듭니다.

여러분은 질투를 느낄 때 어디로부터 이러한 질투의 영이 오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이 겪었던 시험의 때를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어떻게 반응했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겠다고 다짐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제때 나타나시지 않았다는 생각을 품었습니까?

사울의 불신의 영이 맞이하는 비극적인 종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영원을 맞이하기 전 마지막으로 의논한 사람은 무당, 즉 마녀였습니다. 그의 서글픈 마지막 말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떠나서 다시는...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삼상 28:15).

그러나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패역함에 대한 죄 값을 치루셨습니다(물론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는 사울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완고했고 완고한 마음은 자비를 갈구하지 않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신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의 율법주의의 사슬을 끊으시고 질투의 속박에서 구속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신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미래, 자유, 구원을 모두 예수님의 보살핌 안으로 던져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정확한 시간에 오실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그분을 신뢰하는 것 외에는 말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하는 중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존귀케 될 것임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고 계십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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