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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abitation of God -

하나님의 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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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Wilkerson
September 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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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에베소서 2:22). 처소란 거주하는 곳입니다. 헬라어로 “처소”는 지속적으로 거주하는 곳을 뜻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이 만든 성전이나 건물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주님은 사람들 가운데, 즉 자기 백성들의 심령과 몸 안에 거하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주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예수님의 성전 곧, 그분의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모든 성도들은 다 이렇게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물리적 장소에 국한해서 머물지 않습니다. 어떤 나라나, 수도도(심지어 예루살렘도 아닙니다) 아니며 산꼭대기도 아닙니다. 구름이나 공중도 아니며, 어두움과 빛, 해와 달 그리고 별들도 그 분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주님은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 그 분의 존재는 모든 만물을 채우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 안에 사실 집을 만드십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케 된 마음이 그분이 항상 거하실 처소입니다.

언제부터 하나님은 우리 안에 살기 시작했을까요? 우리가 처음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께 드렸을 때부터 입니다.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의 임재가 우리 안에 채워졌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우리를 성부, 성자, 성령 즉 완전한 거룩함으로 이르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한 14:20,23).


잠언서 8장에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 거하실 사람에
대한 언약이 영광스럽게 증거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오래 전, 이미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아들은 인간들이 그분들의 거하실 처소가 될 것임을 계획하셨습니다. 그 분들은 예수님께서 택한 백성들의 심령과 몸 안에 거하시기 위해 땅으로 오실 것에 대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혜로써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린도전서 1:30).

잠언 8장에는, 예수님이 지혜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잠언 8:30). 이 절이 어떻게 예수님에 대한 것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분만이 아버지의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기뻐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잠언8:22-23). 그때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 서로 누렸던 그 기쁨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들은 천상의 놀라운 기쁨과 영광가운데 함께 계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적인 어떠한 슬픔에 대해서도 아시기 전이었습니다. 아직 육체로 계시지도 않았으며 그로 인한 어떠한 짐이나 시험도 경험하시기 전이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육체의 연약함으로 거절과 비웃음과 조롱과 침 뱉음과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기도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이 가리워짐도 경험 못했으며 죽음에 대해서도 결코 경험하시기전 이었습니다.

그때 새 언약의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이 계획에서, 자유의지를 가지도록 창조된 인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인간들이 타락하게 될 것과 구속자가 필요하실 것이라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새 언약의 중재자가 되실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육체를 입고 타락한 인간을 대속하는 제물이 되겠느냐? 그들의 죄를 담당하고 악으로부터 그들을 건져내겠느냐?”

예수님은 이미 채찍과 가시면류관, 그리고 자신의 백성들로부터 오는 미움과 거절의 그 무시무시한 일들에 대해 충분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 다가올 십자가도 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 주시기를 기뻐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 분은 앞날의 고통에 대해 미리 예견하시고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편40:8).

아들은 또한 다음과 같은 믿기지 않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잠언 8:31).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지 않은 무수한 은하계들,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혹성들 가운데 하나님은 이 자그마한 행성을 지구라 부르시며 살기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 곳에서 거처할 장소로 인간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지구 위에서 그분이 사실 처소가 된 것입니다.

이 메시지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아버지와 더불어 대면하며 교통 하는 천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함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실 기대감으로 오심을 기뻐하셨습니다.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잠언 8:31).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내 안으로 이르게 하고 그들과 하나가 되어 교제할 것이다.” 그분은 우리와 더불어 나누는 아름다운 교제의 기쁨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사람이 그의 거하실
성전이 될 것임을 보시고 기뻐하셨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절대 예지를 믿습니다. 우리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사람들이 그의 복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주님은 아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속죄의 제한성에 대해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저주할 사람과 구원할 사람을 정해두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만민을 위해 죽으셨으며 누구든지 그에게로 오면 구원 받습니다. 우리 주님은 누구의 멸망도 원하시지 않습니다(요한복음 3:15-17, 베드로후서 3:9). 하지만 그가 우리의 이름을 이미 아셨다면 자신의 희생에 대해 우리가 받아들일지 혹은 거절할지도 역시 아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예지를 공유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자신을 왕과 구주로서 영접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그분은 이미 보았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중국, 러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혹은 어느 나라에 있건 우리 모두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해 오실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뻐하셨습니다.

당신은 구원 받은 날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 했던 서약,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분을 따르겠다는 약속, 당신이 경험했던 이런 그 때의 감정들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은 영겁전부터 그 사건을 보았으며 당신으로 인해 기뻐하셨습니다. 당신이 태중에 존재하기 전부터 당신이 그를 영접하리라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다윗이 노래합니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자 없나이다”(시편 22:9~10).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편 139:16).

당신이 심기어 지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의 책에 당신 몸의 모든 구성 요성에 대해 기록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님도 당신이 자신의 처소로 자랄 것을 아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이 그의 처소가 될 것임을 보시고
기뻐하신 세가지 이유를 대겠습니다.


1. 예수님은 당신의 신랑으로서 당신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는 그의 신부와 더불어 친교하며 이룰 연합을 예견하셨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우리의 다양한 역할과 위치에 대해 설명합니다. 우리는 그의 몸 혹은 그의 양 떼 그리고 처녀, 아들, 종, 친구 등으로도 불리어 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호칭들 중 가장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불리어 질 때 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과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이사야 62:5).

만약 당신이 기혼자라면 여러분의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약혼한 날을 기억하실 겁니다. 서로 사랑에 빠져서 상대와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입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그분도 역시 당신을 간절히 기다리셨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절대 연합에서 떠나시기로 동의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신부가 되는 그 날을 이미 예상하셨습니다. 그분의 눈에 당신은 사랑스러운 짝이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소중한 존재가 되실 것이고 당신은 그에게 속할 것입니다. 그의 기쁨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의 신랑은 당신이 매일 밀실로 와서 그와 함께하는 시간을 기대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세상을 잊고 그와 더불어 서로 사랑을 나누는 달콤한 교제를 위해 몇 시간을 보내겠지요. 그리고 그분은 당신을 취하시고 당신으로 인해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스바냐 3:17).

이제 예수님과의 첫 사랑에 대해 회상해 보십시오. 당신은 전심으로 그분을 갈망했습니다. 순전한 기쁨으로 그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에 대한 사랑과 예배를 위해 하나님의 집으로 흥분되어 향하였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당신과 함께하는 날들은 언제나 결혼 잔칫날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분이 고백하셨습니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다. 이곳에서 이 세상 무엇 보다도 나를 더 원하는 이와 함께 하리라.”

아내 그웬과 저는 이러한 사랑을 우리의 결혼 생활 내내 향유했습니다. 불과 24시간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하루에 3차례씩 서로 전화를 걸고 맙니다. 지난 50년 간의 결혼 생활 내내 이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을 기대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상상이 가십니까?

2. 주님은 당신과 그의 가장 비밀한 것들을 나눌 것을 생각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표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당신의 배우자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것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다른 신랑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당신에게 그의 비밀한 것들을 나누실 기대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도 그분과 함께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비밀을 나누기를 바라셨습니다.

이것은 심지어 세속적 연인들 간에도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비록 데릴라에 대한 삼손의 즐거움이 육체적이었지만, 그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습니다(사사기 16:4). 데릴라에 대한 그의 사랑이 그의 힘의 비밀을 발설하게 하였고, 그로 인해 그는 그의 생명으로 대가지불 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에 대한 즐거움으로 인해, 주님은 당신이 그의 신부일 뿐만 아니라 그의 절친한 친구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분은 기도의 골방에서 전적으로 자신에게 마음을 쏟고 있는 당신을 선견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결코 보거나 듣지 못한 것들을 당신에게 계시할 것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한복음 15:15).

그분은 당신과 더불어 하나님의 가장 은밀한 비밀들을 나누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잠언 3:32). 실로 주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미리 말씀하시지 않으시고는 어떠한 중요한 변화도 일으키시지 않습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아모스 3:7).

주님은 이 세상과 당신의 삶 가운데 이루시기 원하셨던 것들, 새 언약과 그의 거룩한 이름의 영광, 십자가 희생의 위대함, 이 모든 하나님의 심중의 비밀들을 당신과 나누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도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과 문제, 아픔과 실패, 기대와 소망, 꿈과 두려움까지 듣고 싶어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분으로 다가가시기 원하십니다.

3. 예수님은 그의 신부가 주의 말씀으로 인해 즐거워함을 기뻐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잠언 8:34).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모든 말을 청종하는 자, 매일 아침 나의 문에서 나의 말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사랑스러운 자, 간절히 나의 목소리를 바라는 자, 내가 그에게 한 나의 모든 말에 기뻐하는 자, 그들 안에 내가 거하리라.”

그의 신부로써 우리는 이렇게 화답합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아가 2:14).

다윗은 매일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시편119:16).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시편119:47).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시편119:77). 이 마지막 절에 대한 히브리원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당신의 말씀을 즐깁니다.”

위에서 언급한 말씀(잠언 8:34) 가운데 다음의 두 문구 즉,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그리고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첫번째, 여기서 언급한 문이란 무엇입니까?

시편기자는 그 해답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내게 의의 문을 열찌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시편118:19). 저는 이 “의의 문”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문”이라 믿습니다. 그들은 의를 배우기 위해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신앙인은 주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거룩한 삶 가운데로 인도하는 모든 계시의 말씀으로 인해 그는 기뻐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말합니다. “나는 진실한 사람이기를 원해. 단지 설교 테이프를 듣거나 책을 읽는 것으로는 부족해. 나는 주님을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해. 그러면 그분은 나에게 그의 문을 열어 주실거야.”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령은 매일 아침 그를 만나시기 위해 오십니다. 그리고 속삭입니다. “환영하네 친구여. 오늘도 하나님의 의에 대해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려네.”

두 번째,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떠는 모든 신앙인들을 지칭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선지자가 성전 문설주 옆에서 기다렸던 이사야 6장에 나옵니다.

이사야는 거기서 천사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거룩, 거룩” 그들의 찬송이 하늘에 울려 퍼집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압도하는 음성이 울렸습니다. 그 음성이 얼마나 크고 분명했던지 모든 것들을 흔들었습니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이사야 6:4).

이 강력한 음성은 이사야를 뼈속까지 떨게 했습니다. 너무나 죄에 대해 그를 각성케 한 나머지 그는 울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이사야 6:5).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선지자는 떨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사야는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한 예입니다. 이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임하면 그의 영혼은 죄로 인해 각성합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이사야 66:2).

세상이 창조되기 전 예수님이 우리로 인해 어떻게 기뻐하셨는지 보았습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임재 하시고, 우리로 그의 처소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다른 모든 것에서 떠나 오직 그 분께 매달리는 것을 즐거워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그를 찾고 그와 더불어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비밀을 나누실 것이고,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짐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말씀을 찾으며 그의 길에서 즐거워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계시의 순간 우리는 떨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당신의 삶은 어떻습니까?


성경은 주님이 그의 처소인 우리에게서 무었을 기대하셨는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의 기대를 성취해 나가십니까? 그는 당신과 더불어 일생을 함께하시기를 바라셨습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계속 가까워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매일 멀어지고 있습니까?

당신의 신랑은 당신을 더 가까이 두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날마다 당신과 더불어 달콤한 교제를 원하시기에 주님은 당신에게 마음을 열기 원하셨습니다. 또한 아무도 보지 못했던 많을 일들을 보여주기를 고대하셨습니다. 당신 안에 영적인 열매를 맺도록 당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연약함과 두려움과 결핍에 대한 마음까지 제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눈물과 친밀함 그리고 전폭적 헌신으로 당신은 그의 마음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를 향한 신부의 노래입니다.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아가 2:3).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아가 2:14).

아주 오랜 옛날 세상이 창조되기 전, 바로 이와 같은 당신과의 관계가 그리스도를 기쁘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관계를 가지게 된 때가 이르렀지만 당신은 주님을 거절하고 무관심하게 됩니다. 당신에게 TV 시청, 쇼핑, 인터넷 서핑, 정원을 가꿀 시간은 있지만 주님을 위한 시간은 없습니다. 묻겠습니다. 신부의 마음이 신랑에 대해 지루함을 느낀다면 그가 신부의 마음 가운데 계시리라 믿습니까? 그와 함께 지낼 시간도 대화할 시간도 들을 시간도 없는 사람에게 왜 계속 머무시겠습니까?

엄중히 권고합니다. 주님은 절대 자신을 무시하고 거절하는 자에게 거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항변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결코 주님께 냉담한적이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지난 수주 동안 말씀과 기도에 태만하였고 주님과 더불어 친밀히 교제하는 개인적 시간을 갖지 못했다면, 사실은 당신은 이렇게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나의 행동은 내가 예수님에 대한 열정적 사랑을 가지 못함을 증명합니다. 나의 가족, 직장 그리고 개인적 욕망이 가장 우선 순위에 있습니다.”


소금 땅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히브리서 2:3). 그리스도께 무관심하게 되면 커다란 대가지불을 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그의 구원의 선물을 망각하게 되면 소금으로 변하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이것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에스겔 47장은 여호와의 보좌로부터 발원하는 생명의 강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강은 거룩하며 치료하는 물입니다. 그래서 황폐한 땅을 흘러 들어가 닿는 모든 것을 소성 시킵니다. 이 강은 점점 넓어지고 깊어져 헤엄할 물이 됩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에스겔 47:8~9).

이 생명의 강은 선포된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처음에는 그의 12 제자들의 전도를 통해 단지 조그마한 물방울로 시작해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그의 개종자들에 의해 더 넓게 전파되었고 얼마되지 않아 전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수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헤엄할 큰 강이 되었습니다.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47:9).

이 강은 갈보리로부터 흘러오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접하므로 고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는 그들의 무관심과 나태와 무감각을 깨우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눈이 크게 떠져 주안에서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주님을 구하며 그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와 긴밀히 교제합니다. 그들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성령 안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중의 비밀이 주어졌고 그것은 그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치료의 물에서 헤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 강이 당신을 지나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이 물이 흐르지 않는 사막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주목하십시오.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에스겔 47:11).

아마도 당신은 예수님께 무관심한 죄를 범했을지 모릅니다. 당신에겐 기도도 없었고 순종도 없었고 말씀도 태만해 왔습니다. 당신은 죄를 각성케 하는 설교를 듣고 마음도 움직였지만 언제나 다시 자족감의 자리에 되돌아 왔습니다. 이제 무관심은 당신의 삶의 한 방편이 되어버렸습니다. 참으로 당신은 주님의 당신에게 가졌던 모든 기대를 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에스겔이 언급한 “소금 땅”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완전한 불모지이며, 열매 없는 공허함이며, 메마름과 고립입니다. 이스라엘의 사해를 보십시오. 완전히 소금 땅이 되어버린 물입니다. 그곳에는 심지어 그 주변에도 고기가 살지 못하며 식물도 자라지 못합니다. 완전한 황폐함입니다.

당신이 이와 같이 고립되고 메마른 개펄과 진펄이 되었습니까? 당신의 삶이 하나님께 열매가 없는 불모지가 되었습니까? 당신의 하루하루가 이처럼 공허하고 메마르고 고립되었습니까? 아마 당신은 소금 땅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당신의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 맺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들이 갖고 있는 어떤 자원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만약 이 메시지가 당신을 흔들어 각성케 한다면 당신을 위한 복음이 여기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치료의 강이 흐를 때면
모든 죽은 것들이 다시 소성합니다.


새 언약이 세워졌을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은 그리스도께 무관심한 많은 사람들을 이미 보셨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미온적으로 혹은 냉담한 사람들로 발전해 결국은 파멸하고 맙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다음과 같이 합의하셨습니다. 만약 한마라의 양이 길을 잃고 벗어난다면 예수께서 쫓아가 그를 무리 가운데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치료의 강이 흘러 죽은 인류를 생명가운데로 다시 회복시킬 수 있다고 진리는 말합니다.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에스겔 47:8). 하나님의 치료의 강이 흐르면, 여기저기 푸른 풀과 나무들이 사방에서 싹트기 시작해 곧 온 들판에 생물이 번성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계획도 여전히 가지고 계십니다. 진정 바로 오늘 여러분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삶 속에서 아무리 오래되었더라도 소진되고 침해된 모든 것들을 다시 회복시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데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나”(요엘 2:25).

여러분은 여전히 하나님의 비밀을 듣고 계시를 받을 수 있는 그의 처소가 될 수 있습니다. 비결은 이러합니다. 주님께 태만했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십시오. 주님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일에 분주했던 것을 시인하십시오. 주님이 당신을 불렀을 때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을 회개하십시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에베소서 5:14).

이제 그 분께 부르짖으십시오. “오 하나님,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을 깨우소서. 나로 잠에서 깨어나게 하소서. 변화되기 원합니다. 당신이 내 안에서 하실 일이 있음을 내가 아나이다. 주여 당신의 강한 손길로 나를 만지소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무관심했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패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패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너희의 패역함을 고치리라”(예레미야 3:12~14,22)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재확인시켜 줍니다.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이사야 57:15~19).

하나님은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아들아 잠시동안 너에게 화가 났구나. 너에게 공허함과 외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사탄이 파괴했던 너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리라.”

당신의 삶은 푸른 숲으로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습니다. 오늘이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새로 시작하는 첫날이 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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