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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ubt - The Sin That God Hates Most -

의심 -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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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Wilkerson
April 0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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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을 수 있는 죄 중에 의심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 입니다. 신구약 모두 우리의 의심이 주님을 비탄케 하며, 분개 시키고, 엄청난 고통을 야기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가장 적절한 예를 하나님께서 바로의 손에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신 직후의 고대 이스라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한탄하였습니다. “우리가 열조와 함께 범죄하여 사특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우리 열조가 애굽에서 주의 기사를 깨닫지 못하며 주의 많은 인자를 기억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시편 106:6-7)

시편 기자는 여기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한 사특한 죄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자신들을 향해 믿을 수 없는 기적을 행하신 것을 본 후에도 과연 하나님께서 앞으로 자신을 구원하실 것인지를 의심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바다 한쪽 편 승리의 자리에서 기뻐하며 서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상해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강대한 애굽인들에게서 구원하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기적 중 하나를 방금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어떻게 그 후에도 고난을 당할 때와 똑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했습니다.

시편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이것입니다. “믿기지 않나요? 우리의 주님이 우리편에서 우리를 적으로부터 구원하려고 초자연적인 움직임을 일으키셨어요. 그러나 이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뒤에도 우리는 그분을 불신했어요. 어떻게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대할 수 있지요?”

바다 건너 승리의 편에 이스라엘이 섰을 때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군인들이 빠져죽는 것을 보고 노래하며 춤췄습니다.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매 저희를 인도하여 바다 지나기를 광야를 지남 같게 하사 저희를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속하셨고 저희 대적은 물이 덮으매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말씀을 믿고 그 찬송을 불렀도다.”(시편 106:9-1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합당한 노래, 전능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의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찬양을 부른 장소는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승리한 후에는 어느 누구나 노래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홍해의 시험을 받는 곳에서는 비참하게도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홍해의 반대편에서는 전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기적 같은 구원을 경험하자 시편기자는 이런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저희가 미구에(곧, 오래지 않아라는 뜻)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저희가 낙토(樂土)를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시편 106:13,24)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 노릇 하는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입증하셨습니다. 믿기 어려운 기적과 기사를 그들에게 행하셨습니다. 열번이나 되는 사건에 걸쳐 주님은 애굽을 심판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시편기자에 의하면, 이 기적은 이스라엘에게 그 어떤 인상도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어려운 때가 닥쳤을 때 그 백성은 아마도 뒤를 돌아보고는 과거의 기사를 모두 단지 자연적인 재해로만 여겼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 모든 일들이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확신 시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주님은 이 모든 기적을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조화롭게 사용하셨습니다”라고 간절히 설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능력의 역사를 당연한 일로 여기며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을 기적에만 기초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기적보다는 성령께서 우리가 겪는 시련과 시험을 통해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다지십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이스라엘은 세계가 목도한 적 없는 지구를 흔드는 기적과 기사를 열가지나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홍해에 도착했을 때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곤 털끝만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을 불가능한 상황가운데 집어넣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홍해의 한쪽 편 승리의 자리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서 있던 곳은 히브리어로 “깍아지른 벼랑의 입구”라고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그 이름은 동시에 “위기의 끝”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문자 그대로 광활한 광야의 시작점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곳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그들을 위한 계획을 마음에 담아두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 그 백성들이 겪을 모든 필요를 공급하실 것입니다. 광야에는 식품점이라곤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늘의 만나로 먹게 될 것입니다. 물도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목마름을 해갈 시키기 위해 반석에서 샘이 솟게 하실 것입니다. 백화점도 없었지만 백성들의 옷과 신발은 기적처럼 닳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 하나의 작은 사건도 간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애굽에서 끌어내시기 전에 심지어 금과 은을 실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막에 들어서자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그들에게 공급하셨습니다. 백성들 가운데 쇠약해진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구름으로 그들을 덮으셔서 이글거리는 사막의 태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밤에는 초자연적인 불을 일으키셔서 사막의 한기로부터 보호하시고 어둠을 밝히는 불빛으로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혀 어떤 위험도 겪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시마다 그들에게 공급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뢰와 믿음입니다. 수많은 기적적인 공급을 받은 후에도 그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쨌든 그들은 아주 작은 나라였고 별로 중요치도 않은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목적이 있으셨길래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들이셨을까요? 그들에게 좋은 집과 포도원 그리고 젖과 꿀을 풍성히 주시기 위함이었을까요? 그들이 후대에까지 계속해서 자유롭게 제사를 드리고 경배할 수 있도록 편안한 생을 주시기 위함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 위대한 구원은 자기 백성을 자신이 주는 축복 속에 계속해서 탐닉하도록 하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 경험을 통해 그의 백성 속에 일으키시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위기에 봉착하도록 재앙의 가장자리로 그들을 이끄셨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잃어버린 세상에 하나님의 사자가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원하셨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시다시피 그분의 의도는 처음부터 잃어버린 인류와 접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만국의 빛이 되고 그분의 은혜와 사랑의 빛나는 본이 되도록 선택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분이 모든 나라와 자신에게 대항하여 범죄한 자들에게까지 사랑의 마음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세상이 알기 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이 예루살렘을 넘어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닿을 것이라고 재차 삼차 예언하고 또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곳 광야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완전히 신뢰할 “첫번째 세대”를 형성하기를 갈망하셨습니다. 그분은 만국에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시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민족을 통해 기사를 행하신다는 것을 증명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찬 민족을 통해서 일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해줍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히브리서 11:6) 예수님 자신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때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마태복음 13:58)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신을 완전히 신뢰할 민족을 찾고 계십니다.


성도여러분, 주님은 단지 우리에게 끝없이 그분의 선하심을 입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선택하신 데에는 영원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축복, 교제, 계시 등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잃어버린 인류를 향해 손을 뻗으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가장 위대한 선교의 도구로 만들 믿음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자기 영광을 증거하기 위하여 천사들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특별하고 “독특한” 종류의 사람으로 훈련시키기를 갈망하십니다(베드로전서 2:9). 주님은 세상이 우리가 선포하는 주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증명하고자 하십니다. 그분은 믿지 않는 만국에게 고난의 때를 만나 흔들리고, 깊은 시험에 상처를 받은, 그러나 주님을 계속해서 신뢰하는 신실한 백성들을 보여주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기드온이 살던 시절 그런 사람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과 싸울 자원병을 소집했을 때 수천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에 화답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사사기 7:2-3)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 있는 누구든 두렵거든 지금 집으로 가라 하라. 나는 나의 군대가 두려움에 감염되기를 원치 않는다.” 하나님은 그분의 군대를 위하여 사실 자원병들을 거절하셨습니다. 이 때 22,000 명의 의심하는 자들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기드온은 결국 자원병의 수를 만명까지 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수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마침내 300명의 시험을 통과한 자들을 확정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내보낼 복음의 사자들을 찾으실 때 주님은 두려움과 의심이 가득하고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백성들로 좌석이 가득찬 교회를 모집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힘있고 효율적인 종교단체나 아주 고매한 교육을 받은 신학자들을 찾으시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직이나 고학력자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조직과 학력 자체에 하나님의 시험 받은 사자가 되기에 필요한 자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바 된 상처 받은 세계에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시험과 고난의 학교를 거친 군인들로 이루어진 작은 군대입니다. 하나님은 시험 받기를 자원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불의 시험을 기꺼이 받으려 하는 자, 그 믿음을 정련하고 정금과 같이 나아올 모든 자들을 모집하십니다.

저는 지금까지 사역을 하면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신 다음에는 거의 즉시로 시험의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강에서 나오시자 예수님은 성령에 의해 광야로 이끌리셔서 극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누가복음 4:1-2). 똑같은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구원을 받자마자 광야의 위기 언저리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하나님께서 온 세계 앞에서 불가능한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백성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종들이 시험과 고난을 견뎌내며 믿음을 지키는 것을 온 세상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뢰가 다니엘을 통해 예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던 총리들이 다니엘을 대적하여 음모를 꾸며서 다리오 왕에게 30일 동안 기도를 금지시키도록 설득했습니다. 그들이 예상했듯이 다니엘은 이 금령에 불복하여 하루 세번씩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소중히 여겼지만 자기 자신이 내린 조서 때문에 이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을 사자굴 속에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에 대한 금령을 위반하는 벌이 죽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께서 그가당하는 시험을 끝까지 이겨낼 수 있도록 돌보실 것을 알았습니다.

다니엘이 고난을 겪는 내내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위해 근심하며 관찰하였습니다. 그는 다니엘을 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다니엘이 사자들에게 던져지기 직전에 왕은 다니엘에게 확언하였습니다.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다니엘 6:16). 그러나 그날 밤 왕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맟도록 금식하고 침수를 폐하니라”(다니엘 6:18)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님이시오 구원자이시며 치료자이시라고, 불가능한 일을 행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고 세상에 선포한다면 그들은 여러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기 위해 여러분을 관찰할 것입니다. 그들의 눈은 하나님의 선하심, 능력, 그리고 영광을 자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기록했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시편 31:19). 하나님께서 고난을 겪으나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위해 쌓아 두신 이 “큰 은혜”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는 세상을 향한 헤아릴 수 없는 영광스러운 간증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믿음에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그는 굶주린 사자들의 입을 닫으셨습니다. 다음날 다리오 왕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셨는지를 간절히 보기 원했습니다. 그는 즉시 사자굴로 뛰어가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고 외쳐 물었습니다(다니엘 6:20).

이 질문은 지금도 우리 시대가 받고 있는 질문입니다. 다리오 왕처럼 세상은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능력에 대한 간증을 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질문을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오, 그리스도인이여, 저는 당신이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일생 일대의 시험가운데 있습니다. 제게 말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이 이 시련을 견디도록 지탱해주셨나요? 지금 사자굴에 있는 것과 같은 당신의 간증은 무엇인가요?”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다니엘 6:21-22)라고 외치는 다니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다리오 왕이 얼마나 기뻤을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다니엘은 살아있었을 뿐 아니라 무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경건한 종이 밤새도록 곤히 잤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초인적인 인간이 아니듯이 다니엘도 그러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위험을 닥쳤을 때 초자연적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한 순간에 우리의 떨리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다니엘은 밤새도록 뜬눈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사자가 입을 벌려 하품을 하면서 이빨을 드러낼 때마다 다니엘은 틀림없이 마음속으로 외쳤을 것입니다. “지금도 믿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서 짐승의 입을 닫으실 것을 믿습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다니엘 6:23)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전 왕국이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선언합니다.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다니엘 6:25-27)

다리오 왕이 여기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극찬하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자연적 기사 때문 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죽음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이방의 왕은 자신이 선포하는 것을 그대로 믿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선언했습니다. “나는 자기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지키는 한 사람을 보았다. 그는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님은 그를 지옥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셨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안식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전혀 없는 곳이 있습니다. 이 곳에는 갑작스런 재앙이나 고난, 실직의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람이나 타락, 영혼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이 곳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완전히 확신하는 곳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곳을 완전한 안식처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완벽한 안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의심과 불신이 그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계속해서 막았습니다.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히브리서 4:6).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는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살면서 언제나 다음 차례의 위기가 일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시험을 받게 되자 아주 처량해졌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러한 안식가운데 들어갔더라면 하나님의 사역은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서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주님은 모든 세대가운데 그곳에 들어갈 백성들을 계속해서 찾고 계십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히브리서 4:9)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이 안식을 제안한 것은 너를 위한 것이다. 내 안에는 모든 의심이나 두려움이 존재치 않는 곳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곳은 너희가 앞으로 닥쳐올 어떤 일이든지 준비되게 하는 곳이다.” 이와 같이 그분의 말씀은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브리서 4:1)

오늘날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그리스도의 안식에 관해 무지합니다. 사람들이 일간 신문에서 비극적인 사건들, 재앙, 죽음 등 끔찍한 기사를 볼 때면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들의 끊이지 않는 기도는 “오, 하나님,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려가지 마십시오. 저는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님의 안식가운데 거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그런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기치 못한 위기를 당했을 때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거나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일으키셨다고 비난하거나 희망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닥치는 공통적인 고통을 견뎌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영혼은 안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 관한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아내 그웬이 처음 암에 걸렸을 때가 34살 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우리는 망연자실했습니다. 우리는 막 식구들을 뉴욕으로 이사 시키고 저는 거리의 갱들에게 사역을 시작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이제 갱단의 멤버들과 마약 중독자들에게 설교를 하며 거리를 걸으면서 저는 고통과 두려움의 눈물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끊임없이 저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나는 신실하다, 데이빗. 나는 너와 너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암으로 인한 엄청난 시련을 겪는 동안 저와 주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승리하는 것을 단지 한번의 경험으로 그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의 목표는 우리가 위기에서 나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시험을 받는 동안 저는 믿음을 지켰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그 시험을 통과했을 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홍해에서 승리를 거뒀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다른 시험이 연이어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시험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가운데 거하는 것은 삶의 방식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의 약함을 체휼하시는 대제사장을 알고 시험가운데서도 그분의 평안과 확신으로 굳게 서기를 원하십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열반과 같은 무아지경에 이르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뉴에이지의 리더들은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견뎌내는 유일한 길은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걍팍하게 하여서 여러분의 모든 사랑을 없애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만약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끊으면 여러분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생의 고난에 대해 강철 같은 냉혹함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종들이 마비될 때까지 자신을 마취시킬 때 결코 영광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안식에 관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일 가운데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약속이 신실하다는 것을 믿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저는 네 아이의 아버지이자 11명이나 되는 손자, 손녀의 할아버지 입니다. 저는 정직하게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자손이 고통 받는 것을 볼 때면 제가 함께 그 고통을 나누기를 원했고 단 한 순간도 그냥 물끄러미 지켜보며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저는 그들을 치유하고 구원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우리의 시련가운데 얼마나 동행하십니까?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기를 얼마나 갈망하십니까?


그리스도안의 완전한 안식은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노력과 땀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믿음만이 우리를 이 완벽한 안식가운데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히브리서 4:3). 간단히 말하자면 상황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여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신실하시다는 것을 믿도록 우리의 마음을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브리서 4:10).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안식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시험의 때에 용감한 척 얼굴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위기를 받아들이는 척하며 극복하려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르지나 않을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정신적 노력”은 더 이상 우리를 몰아가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단순히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런 믿음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기도가운데 주님을 찾으며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동행하면 됩니다. 이렇게 반대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다 노력하는 것인데요.”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믿음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이 훈련을 지켜나갈 때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과 고난의 때에 힘의 근원을 세워주시는 것을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강건하게 하시는 것이나 그분의 능력이 우리 안에 세워지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음 시험이 닥치면 이 하늘의 자원이 우리 안에 있음이 명백히 드러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금식, 기도, 연구, 성령의 능력을 통해 그분의 명령을 준행하기를 구하며 주님을 부지런히 찾는 제1의 이유입니다. 제가 목사라서 본을 보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저도 제 앞에 많은 시험이 아직 남아있음을 알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 것입니다. 제가 주님을 섬기는 한 사단은 결코 저를 쉬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극심한 전쟁과 기습을 맟닥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승리와 평안에도 불구하고 저는 언제나 제가 견뎌내도록 도와주는 하늘의 자원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저는 전장터에 나갈 준비가 완전히 된 군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전투가 일어나기 오래 전 이미 승리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승리는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적응하는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적군이 갑자기 제게 닥쳐올 때 저는 모든 쓸 수 있는 총탄을 모두 다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 총탄은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에 의해 공급됩니다. 저는 그것을 제 마음에 숨겨놓았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사단에 공격할 때는 저는 빼어 쓸 총탄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할 것입니다. 저는 전투가 발발하기 전 하나님과 그 전투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헌신된 군사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을 무장시키고 계신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다음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을 것입니다.

1.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는 자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지 이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을 향한 그분의 완전하신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닥쳐올 어떤 위기도 다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분의 말씀을 먹음으로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2. 여러분은 날마다 좋은 시간을 기도에 드림으로 하나님과 친밀함을 형성해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위기의 순간 그분께 우리가 부르짖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에 부르짖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축복의 시간에도 역시 우리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상황에 오락가락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주님과의 관계가 발전해 가는데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3. 여러분은 견뎌낼 길을 만드시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어떤 시험도 허락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시험이 닥쳐온다면 여러분이 강한지 아니면 약해지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 필요할 때에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과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면 여러분이 필요로 할 때 견뎌낼 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분의 안식가운데 들어오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바로 오늘 말입니다!


우리 나라도 다니엘서에서처럼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심판의 글을 적어놓는 것을 본다면 사람들은
기도하는 지도자들을 소리쳐 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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