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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aring Down the Altars of Baal -

바알의 단을 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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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Wilkerson
October 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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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6장을 여는 첫 구절을 주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사사기 6:1).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여러 세대 동안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반복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의 앞장을 죽 읽으면 우리는 이 말씀이 여러 번 반복되어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이야기하고 있는 본질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바알들을 섬겼다.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셨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사건은 사사기 3장에서 일어납니다.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년에…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사사기 3:11-12). 하나님은 그 백성을 대적인 모압에게 넘기셨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사사기 3:12).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이방의 대적을 18년간이나 섬기면서 고난과 공포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 후 4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여호와께서…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사사기 4:1-2). 이번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들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대적에게 점령을 당해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할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이스라엘에 구원자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지도자가 죽는 즉시 그들이 죄 가운데로 돌아가리라는 사실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악순환은 반복되었습니다. 이러한 주기적인 반복은 오늘의 말씀 6장에서도 계속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사사기 6:1).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대적 미디안에 의해 끊임없이 낮아졌습니다. 미디안인들은 매년 시계처럼 정확히 이스라엘을 급습하여 이스라엘의 식량과 물건을 노략했습니다. 미디안의 대상들은 자신의 낙타와 가축을 이스라엘 평원에 모두 풀어놓아 풀을 먹였습니다. 짐승들은 작물을 모두 먹어치웠고 메뚜기 떼처럼 들판을 쓸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이 저항할 때면 미디안인들은 이스라엘을 산과 언덕으로 몰아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국 동굴을 피난처로 삼아 먹을 것을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사사기 6:6). 이스라엘은 대적에게 집, 식량, 소유물,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은 채 거지처럼 노숙자의 신세로 살았습니다.

다시 한번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사사기 6:6). 그러나 이 부르짖음은 회개의 부르짖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미디안인들에 의해 받는 압제로 인해 부르짖었습니다. 그것은 가난, 상실, 불안으로 인한 고통의 부르짖음일 따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보내시기 전에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이유를 지적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사사기 6:8-10).

주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은 “나는 처음부터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하였다. 너희 하나님 외에 그 어느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그 어떤 두려움도 너희 마음에 자리잡지 못하게 하라고 말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또 다시 나에게 불순종하였다. 너희들은 모든 두려움이 너희들에게 침입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리고 너희들은 내가 너희를 대적에게 넘겨주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너희를 다시 내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로 계속해서 넘어지게 했던
이 엄청난 악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선지자는 이스라엘에게 분명히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사사기 10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죄를 인정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사사기 10:10).

여기서 이스라엘이 바알들을 섬겼다고 했을 때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바알들이란 단어는 복수 형태 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거짓 신들을 의미합니다. 바알들의 뿌리는 바알이며 우리는 성경에서 바알을 마귀의 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바알의 임무는 하나님께로부터 그 백성들이 드리는 모든 경배와 믿음을 빼앗는 것입니다. 바알은 우리의 시야를 주님보다는 우리의 환경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이 임무를 완수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들의 죄는 슬픔, 경제적 재난, 대적에 대한 공포, 불확실성 등을 가져왔습니다. 사실상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더 이상 보호하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만 이스라엘을 깨우기 위해 대적의 손에 그들을 맡기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위기의 근원이 자신들의 죄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이 백성들은 아기들을 제물로 드리고, 무고한 피를 흘리며, 쾌락에 눈멀어 음란해졌습니다. 그 결과 재앙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그들은 이 재앙을 자신들의 패역함과 연관짓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개케 하시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을 허락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의 상황이 이와 똑같음을 보게 됩니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졌습니다. 국방성이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극소수의 남은 자들만이 이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있습니다. 수십 세기 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던 것과 똑같이 하나님께서는 잠시 동안 우리를 대적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였고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그에게로 이끄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 6개월이 넘도록 미국은 역사상 최악의 산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전 국토의 삼분의 일이나 되는 면적이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게다가 급격한 기후 변화와 끔찍한 홍수도 경험하였습니다. 곤충들이 엄청난 지역의 숲을 삼켜버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치명적인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의 창궐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중서부에서는 끔찍한 뇌질환이 그 지역의 모든 사슴을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오십만 마리가 넘는 사슴이 방역차원에서 총으로 살해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전문가들은 질병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아직도 이십만 마리가 넘는 사슴들을 더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돌이키는 곳마다 또 다른 위기를 직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분명히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를 깨우기 위해 지금 네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너는 여전히 나를 무시하는구나. 그렇다면 나는 너를 더욱 세게 두드릴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쌍둥이 빌딩으로 비행기를 돌진시킨 무슬림 비행기 납치범들을 막으실 수 있었다고 믿으십니까? 물론 그러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비슷한 음모를 여러 번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작년에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려 애쓰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의 상징이 파괴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곳이 우리가 모든 자부심과 믿음을 위탁하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대통령, 우리의 의회 지도자들, 그리고 안보 관계자들은 “더 큰 공격이 올 것”이라고 우리에게 경고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더 큰 공격이 올 때를 기다립시다. 가방 폭탄일 수도 있고 주요도시에 대한 탄저균이나 천연두 공격일 수도 있지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면 미국이 하나님께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자신에게로 돌이키라고 부르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입니다.”

저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이 이스라엘 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다”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이상입니다.


이스라엘은 고통가운데 큰소리로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의 죄가 심판을 자초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진정으로 회개키 위해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를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범죄함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밟아야 할 단계가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해도 주님은 우리에게서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하십니다. 이러한 단계를 밟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그의 능력의 팔을 드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 다음 단계가 정확히 무엇인지 하나님의 다음 명령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알을 부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드온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아비의 수소 곧 칠 년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사사기 6:25).

이 말씀을 듣기 전에 기드온은 아마도 자신이 충분히 회개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주님께 부르짖은 바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보내신 선지자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말씀에 완전히 순복하였습니다.

저는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에게서 이와 똑 같은 회개의 태도를 보게 됩니다. 전국의 교회에서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에 의하면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가운데 있는 우상, 바알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엄청난 우상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회개가 온전하려면 이 우상을 헐어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부르짖는가, 얼마나 기도와 금식을 하는가는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그토록 많은 심령을 사로잡고 있는 이 우상을 헐어버릴 때까지는 우리가 행하는 그 어떤 일도 아무 영향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알이란 무엇이죠? 바알이 역사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볼 수 있죠? 어떻게 고대의 거짓 신이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에 존재할 수 있지요?”라고 물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구약에서 바알은 나무나, 돌, 금속으로 조각하여 만들어진 우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아도니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아프로디테가 사랑한 멋진 미소년)와 같은 잘생긴 멋진 남자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우상은 생명 없는 조각의 조합에 불과하지만 그 뒤에는 강력한 영이 숨어 있습니다.

현대 문명 사회에서 우리는 이성적인 사람이 조각상 앞에 절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불교, 힌두교, 하레 크리슈나교(미국의 신흥종교, 힌두교의 일종)를 포함한 이방의 종교들에는 아직도 그러한 조각상들을 그들의 제식 가운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우상이 바알이나, 부처건, 아니면 수백만의 힌두신들이건 관계없이 똑같은 마귀의 영이 배후에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은 한가지 목적을 위하여 지옥으로부터 보냄을 받았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실재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것이 불신의 영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명백합니다. 그 영은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한 의구심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공격합니다.

이러한 영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입니다. 만약 최초의 공격시에 이 영을 즉시로 격퇴하지 않으면 이 영은 우리의 생각에 잠입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의심과 두려움이 들어오도록 허락하면 바알의 영은 영혼 전체를 사로잡습니다.


저항이 없으면 바알의 불신의 영은
침입하여 단을 세웁니다.


물어볼 것도 없이 불신은 우상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굴복시켜 그 힘에 복종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을 모든 종류의 악에 노출시킵니다. 사실 사사기 전체를 통해 우리가 반복해서 접하게 되는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목전에 악을 행하였도다”는 구절은 대단한 죄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불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에스겔 8장에 명백하게 예시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이상 가운데 성소로 데려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저지르고 있는 네가지 가증한 죄악을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령께서는 에스겔에게 한 층 더 가증스러운 죄악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에스겔 8:8-10).

에스겔은 자신이 본 것으로 인해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가 본 방의 벽들이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에스겔 8:10). 이 벽을 향해 칠십 명의 이스라엘 장로들이 향로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그림의 배후에 숨어 있는 영을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이 광경은 이스라엘 장로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준다고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생각하고 있던 것입니다(에스겔 8;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알의 영이 완전히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성령께서 주신 이상에 의해 에스겔은 어떻게 이 영이 사람의 마음에 제단을 쌓고 조종하는지 직접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가난을 미디안인들의 풍요와 비교하면서 그들은 “우리 하나님은 어디 있는거지? 우리 기도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신다는 아무런 증거도 볼 수 없어. 주님은 우리를 버리신거야”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사탄은 그의 유일하고도 최우선적인 임무, 즉 성도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성경이 이야기하는 바와 같지 않으시다는 생각을 각인시키는 일들을 성취해왔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며 모든 사물과 사람을 돌보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도록 우리를 설득시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우리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도록 마귀는 우리 마음을 조장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이 일을 완전케 하기 위해 바알의 영을 내보냅니다.

바알의 영은 죽어가는 아이나 고통 받는 가족 곁에 언제나 존재합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이 고통 받는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갑자기 공포감이 우리의 생각에 주입됩니다. 그 후 죽음이 닥치면 그 의심의 씨앗은 물을 만난 듯 활개를 칩니다. 곧 우리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실 수 있지?”라고 묻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난 달 저는 911 테러 공격 일주년 기념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인터뷰를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테러사건이 있은 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모두 잃어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전형적인 답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공의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물끄러미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실 수 있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내버려두는 하나님은 더 이상 믿을 수 없어요.” 여러 사람이 “저의 하나님은 9월 11일에 죽었습니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여러분이 헌신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이든지 불신자이든지 그것은 관계가 없습니다. 재앙이나, 재난, 끔찍한 사고가 있으면 사탄은 바알의 역사를 이루도록 마귀의 영의 무리를 내보냅니다. 그들은 즉각 침입하여 “하나님이 어디있지? 어떻게 하나님이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지?”라고 속삭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불확실성이 만연해 있습니다. 기업 도산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근로자들은 실직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보면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사탄은 전면 공격을 시작해 온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탄은 여러분의 생각에 칩입하며 의심의 씨앗을 심고 바알의 제단을 세우려 합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알고 있는 여러분의 모든 지식을 의심하기를 바랍니다.


“바알의 단을 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아마도 “나의 삶에 우상숭배란 없어. 그런데 어떻게 내가 바알의 단을 헐지?”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바알은 불신의 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며 모든 예언적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 해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관해 마음 속에 의심을 품는다면 우리는 바알의 영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너희 영혼에서 불신의 영을 헐어버려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불신을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진” 죄로 묘사했습니다(예레미야 17:1).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노로 맹렬케 하며 영영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니라”(예레미야 17:4). 그들의 죄가 무엇이었습니까?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예레미야 17:5, 7).

우리의 눈을 기드온에게로 다시 돌리면서 이 단호한 어조를 마음에 새겨두십시오. 여기 하나님께 부르짖고 강력한 예언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에 순종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여전히 의심과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드온의 아버지는 자신이 소유한 땅에 바알의 단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단지 나무로 만들어진 조각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의 영은 기드온의 마음에 견고한 진을 구축해 놓았습니다. 기드온이 그 단 곁을 지날 때마다 그 우상이 기드온의 영혼에 속삭였습니다. “네가 겪는 가난, 고통, 채워지지 않는 필요들을 한 번 봐라. 하나님이 어디 있니?” 진실로 그 우상은 그것을 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증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아. 하나님은 우리는 안중에도 없어. 너희 같이 작은 자들을 보호하거나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데 신경을 쓰기에는 하나님은 세상일로 너무 바쁘셔. 주님은 너희를 버렸어”

이제 사사기 6장에서 한 천사가 이 말씀을 기드온에게 가져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사사기 6:12).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단지 여섯 마디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중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네 마디 는 기드온 뿐 아니라 오늘날의 교회를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네가 필요한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이 약속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진리가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 되어야만 합니다. 고난, 슬픔, 질병, 가난, 유혹, 어떤 시험이 닥친다 할지라도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우리 아버지의 약속은 진실됩니다. 우리가 어떤 시험을 당하든지, 특별히 우리가 시험에 휩싸이고 헤어날 길이 없어보일 때 이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믿음가운데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당신이 함께 하신다면 누가 나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기드온이 주님의 천사를 만났을 때는 그의 마음에 불신의 영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사에게 대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사사기 6:13).

기드온의 말이 친숙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그는 에스겔이 본 환상 속의 칠십 장로들의 마음 속에 가득찼던 것과 똑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에스겔 8:12). 그들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계시기는 하지.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모든 것의 창조주 이시지.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는 신경쓰지 않아.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보고 있지 않지.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어.”


하나님은 이미 기드온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해야 할 마음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여전히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의심하고 있구나. 기드온아, 그것은 우상숭배이다. 이제 가서 아버지의 수소를 취해 그 우상을 헐어버려라. 그리고 그 숲에 있는 모든 나무를 잘라 새 단을 쌓아라. 그 단에서 네 아버지의 우상을 태워버려라. 나는 네가 그 불신의 상징을 무너뜨리고 완전히 파괴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왜 바알의 단을 헐기 위해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을 택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극도의 의심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계신가 조차 믿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불신으로 가득 차서 천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습니다”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하나님을 여러 번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기드온의 의심의 요청에 하나님께서는 모두 응답해 주셨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중에 기드온이 전투에 돌입하려 할 때 그는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전투 가운데 진정 저희와 함께 계신다면 저에게 그것을 보여주십시오. 오늘 밤 마당에 양털을 올려놓겠습니다. 내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기드온의 대담함에 깜짝 놀라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기드온은 땅이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양털을 들었을 때 그가 요청한대로 양털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기드온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우리가 시험을 거칠 때마다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주님, 이것은 제가 겪어본 가장 큰 위기입니다. 이런 것은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의심이 생깁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상황에 부딪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의심이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이런 질문을 하면서 발버둥치지는 않으십니까? “주님, 어디 계십니까? 제 눈물을 보지 못하셨나요? 제가 당하는 시험 가운데 당신이 저와 함께 있다는 증거가 어디 있나요? 저를 버리셨나요? 제 믿음이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나요? 왜 당신은 이 짐을 제게서 옮기시지 않는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의심과 두려움을 당하는 어느 누구도 정죄하거나 무가치하게 보지 않으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의심이 하나님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것은 단지 질문이었습니다. 기드온은 단지 답을 원했던 것입니다.

믿음 없는 기드온을 부르셔서 행하게 하신 자비의 하나님께서 똑 같은 일을 여러분과 행하기 원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한 위대한 승리를 계획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있는 모든 대적을 물리치기를 사모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모든 견고한 진, 모든 의심, 모든 두려움, 모든 불신의 생각들을 파할 수 있는 그분의 능력과 권세를 주시기를 열망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특별한 일들을 행하시려 한다는 느낌을 제게 주셨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승리로 이끄시려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미 그들을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평안과 안식의 처소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위해 주님의 강한 팔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이 메시지를 읽는 많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믿습니다. 주님은 여러분 안에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모든 의심의 생각을 무너뜨리고 모든 두려움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마음 속의 바알의 영을 헐어버리고 믿음으로 말하고 살아가기 시작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그 우상을 헐어버리는데 필요한 숫소를 공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과 힘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적들에게 선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사탄아, 너는 나를 해칠 수 없다. 그리고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멈출 수 없다. 주님께서 나를 향한 승리를 계획해 두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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