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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Touch of God - Daniel -

하나님의 만지심 -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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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Wilkerson
December 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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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습니다,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다니엘 10:10). 여기서 “어루만졌다(touched)”란 단어는 세게 붙잡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은 “여호와의 손이 내게 닿았을 때, 나로 엎드려지게 했습니다. 그분의 만지심은 나로 전심으로 그를 찾게 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만지심은 어떤 사람의 삶이든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그 사람은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주를 찾는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나는 종종 하나님이 왜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 사람만을 만지시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어떤 종들은 주를 간절히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되는가 하면 다른 신실한 사람들은 왜 자기의 길로 가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만지신 종들은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갖습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나는 다니엘을 생각해봅니다. 이 헌신된 종에게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었습니다. 자, 다니엘 시대에 주를 섬기는 다른 훌륭하고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율법학자 바루크가 있었습니다. 다른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에 노예로 있는 동안에도 자신들의 신앙을 잘 지켰습니다. 그들 중 40,000명은 성전을 재건축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다니엘에게 손을 대셔서 만지셨을까요? 이 한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었던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을까요? 그는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은 이 이상은 보지 못하였다”(다니엘 10:7)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니엘이 보았던 엄청난 이상이 있습니다. “정월 이십 사 일에 내가 ... 큰 강가에 있었는데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10:4-6).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분명하고도 생생한 비전이었습니다. 사실, 밧모섬에서 요한이 본 이상과 같은 것이었습니다(요한계시록 1:13-15 참조).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이”(다니엘 10:6)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슬쩍 엿본 것도 속삭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레 소리와 같이 포효하는 소리였습니다.

주님은 그 자신을 어떤 특별한 이유로 이렇게 다니엘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오랜 가뭄이 끝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 때를 정하신 그분은 길을 잃은 인류에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종들이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고 이유를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10:14).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메시지를 전할 목소리가 필요하셨습니다. 누군가 그분의 부름에 신실하게 응답하는 기도하는 종을 원하셨습니다. 다니엘이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루 세 차례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강을 따라 걷고 있던 그 때,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그에게 나타내셨습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경험으로 온 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그는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이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 내가 그 말소리를 들었는데 ...”(10;7-9)라고 말하였습니다.

성서는 다니엘과 함께한 사람들을 확인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호위병들이거나 정부 관리들이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다니엘은 그 나라에서 높은 직책을 얻었습니다. 내 생각에, 이러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다니엘의 신앙심 깊은 친구들과 동료들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도망하였을까요? 다니엘은 그들이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왜 숨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요?

여기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소유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늘로부터 오는 말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종의 몸과 영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경외케 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하는 종들 중 한명을 만지실 때는 언제든지, 그 인간 그릇 안에 그분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먼저 주님은 그 사람의 모든 자아를 벗기십니다, 그리고서 그를 완전히 소유하십니다.

이 과정의 장면이 육에 매인 기독교인들에게는 두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숨은 죄로 녹아 없어지거나, 또는 그들로 하여금 그 현장에서 달아나게 합니다. 나는 사역을 뉴욕으로 옮기기 몇 년 전에 내 자신의 삶 속에서 그렇게 감동케 했던 일을 기억합니다. 아내 그웬과 나는 텍사스에서 다른 몇몇 크리스천 부부들과 함께 안뜰에 앉아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나님의 영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엎드러졌습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들에 관해 내 마음에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나는 울었고 예언하였습니다. 마치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옮겨져 하나님 바로 앞에 있었던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의 영은 나를 감동시키시고, 나를 부르셔서는, 나에게 사역에 대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나는 내가 그런 상황에 얼마동안 있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그러는 동안 우리 방문자들은 변명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 현장의 어떤 것이 그들로 하여금 두려워 달아나게 했던 것입니다.

나는 가끔 의아하게 여깁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만지심이 단지 예정의 문제인가? 그분의 만지심을 받은 사람들은 선택된 사람들인가? 그리고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렇게 선택된 사람들인가? 그들의 소명이 단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말씀이 주어지면서 성령에 사로잡혀 기도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내 영혼에 주신 설명할 수 없는 갈망 때문에 이러한 질문들을 합니다. 내 영혼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갈망합니다. 내 안의 그 무엇이 다른 사람의 계시에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고요? 나는 하나님이 이 세대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특별한 말씀이 계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분은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종들을 이 땅에서 찾고 계십니다. 그분은 잃어버린 세계에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섬길 남종과 여종을 원하십니다. 그의 강력하고 기름 부어진 말씀만이 점점 기세가 오르고 있는 이슬람과 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진리만이 그 자신의 교회에서 위선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뉴욕시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후, 교회 출석이 급등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들의 교회에 다시 몰려들었습니다. 갑자기 하나님은 다시 인기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모든 스포츠 종목마다, 모든 정부 회기마다, 모든 시민 모임마다 언급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전국이 기도를 하고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출석은 9월 11일 재앙보다 더 낮습니다. 최근 국내 여론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의 말들을 인용합니다. “교회는 불쾌한 곳이야, 다시는 가지 않겠어.” “거기서는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아. 시간을 드릴만한 가치가 없어.”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그것은 교회가 그들의 영적 권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들은 대부분의 설교는 죽은 것이며 생명력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현재의 모습을 하나님은 약하고 진실한 성품이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현재 사람들은 복음에 무관심해지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특히 교회가 부적절하다고 말하면서 마다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 눈에 웃음거리가 되는 기관과는 아무 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야흐로 이 모든 것을 바꾸고자 하십니다. 지금도 주님은 하나님의 만지심과 성령에 사로잡힌 남종과 여종을 일으키십니다. 주님은 이러한 종들이 그의 진리로 불타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한 주님의 만지심을 전 세계가 알도록 하실 것입니다.

순전한 말씀은 이제 막 다시 한번 하늘에서부터 올 것입니다. 위선과 마귀의 거짓말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슬람은 사단을 태생케 하는 것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육적인 것들은(사리사욕, 유물주의, 욕망) 하나님의 말씀의 강렬한 불꽃 가운데로 던져질 것입니다.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자신을 헌신한, 하나님을 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입술에서 진리가 선포되어질 것입니다.


1. 다니엘이 결코 기도를 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자신의 예언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은 신실하게 기도하는 모든 종들을 만지십니다. 주님은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자기 자신을 훈련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성경은 이러한 태도를 “마음을 정하기”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은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다니엘 9: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 때 우리에게,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9:20-2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다니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간절히 기도하며 그를 구할 때 하나님이 나를 만지셨습니다.”

다니엘은 그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학식있는 사람 밑에서 수학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이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궁정에서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지식을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초자연적으로 주어졌던 꿈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가르쳐줄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내가 ... 기도할 때에 ... 내게 이르더니 네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9:21-22)라고 단언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말씀이 나오도록 했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10:12, 14).

다니엘이 어떻게 기도했기에 그러한 방문을 받은 것일까요? 성서는 우리에게 그가 철저히 깨어진 상태로 3주를 보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10:2-3).

다니엘은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애통해하며, 자신을 육체를 절제하며, 신의 뜻을 알고자 마음을 다해 21일을 보냈습니다. 그는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주여, 내가 어떤 대가를 치르든 주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을 알 때까지 당신 앞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바로 지금,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전에 없던 하늘로부터 오는 말씀을 필요로 합니다. 죽고 메마른 설교로 인해 역사상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병들어 있던 적이 없습니다. 독실한 사람들은 삶을 변화시키는 말씀을 들려줄 것을 정말로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강단은 영적 권위가 없는 자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하지 않는 목자들은 두려워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깨달음과 소망을 줄 수 없음에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기도할 때 다니엘에게 다른 어떤 것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육체의 말하는 능력이 종말에 다달았습니다. 주님은 다니엘의 입술을 만지셨으며 그는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종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입을 정결케 하였다. 이제 내가 너를 통해 말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의 입이 씻겨져서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를 들고 있습니다:

*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예레미야 1:9-10).

*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이사야 6:5-7).

* 다니엘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섰는 자에게 말하여 ...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로 강건케 하여”(다니엘 10:16-18).

이 사람들의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예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분 안에 깃들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규칙적으로 그분께 말하고 그분 앞에서 기다릴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오직 올림픽을 목표로 한 선수들처럼 그러한 종들은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한꺼번에 훈련받는데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루 중 몇 시간씩 기도하는데 시간을 보낼 수가 없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맡은 일이 있어요.” 다니엘이 얼마나 바쁜 사람이었는지를 환기시켜보겠습니다. 저명한 정부 관리로서 그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 믿을 수 없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여전히 다니엘은 주를 간절히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루 세 번씩 매일같이 가장 값진 시간(사실 기도하는 것)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비전을 가지고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이에 나 다니엘이 혼절하여 수일을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다니엘 8:27). 병상에서 조차, 또는 그의 매일의 업무동안에서 조차, 다니엘은 주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자신의 목자들 가운데 이와 같이 필사적으로 구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단지 설교에 급급한 자신에 진력이 났으며, 대신 새로운 메시지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나, 아직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목사들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그분은 메마른 상태로 계속 가기보다는 예수와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사는 설교자들을 원하십니다. 이러한 갈급한 사역자들은 “오, 하나님, 내 영혼에 불을 내려 주십시오. 나를 부수시고, 내 삶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제 똑같은 일을 더 이상 반복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만지심이 필요합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백성들에게 말하는 예언자로서 섬기기 원합니다”라고 부르짖습니다.


2. 다니엘은 사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영적 쇠퇴를 슬퍼하였습니다.


오늘날 중보기도에 시간을 바치는 독실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축복받은 종들은 큰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이 나라의 죄나 하나님의 집의 죽은 상태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들이 우울한 얼굴로 돌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즐거운 듯한 신자라 해도 교회의 미적지근한 상태와 이 나라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 한탄하는 마음의 태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삶 속에서 이것을 봅니다. 명백히, 다니엘은 자신의 사회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슬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한 밤중이었을 때 다니엘은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자의 굴에서 기적적으로 건져졌습니다. 주님은 이 사람을 엄청나게 축복하셨고 번영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 다니엘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그에게 보여주셨던 슬픈 것들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다니엘 7:15).

여기 주님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생각들은 어떤 사업 생각들이나 세속적인 모습들로 가득 찬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은 주님을 계속해서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천국은 미래의 비전을 준비하여 그에게 열려졌습니다. 다니엘은 그가 하나님과 슬퍼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놀라운 예언의 영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자신의 계획을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악한 것을 뿌리 채 뽑아서 던져버리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분은 악한 민족들을 짓밟으셔서 그들을 멸망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심판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리고 때가 다 되어 갑니다. 왕이 오시면, 서책들이 곧 열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깊이 잠들어 있었고,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염두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집의 죽은 상태와 악행에 대해 슬퍼하였습니다. 그는 확언합니다. “신의 말씀과 앞으로 되어질 일들이 나를 떨리게 하였습니다. 그것들은 내 영혼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탄식하고 슬프게 했습니다”(다니엘 9장 참조).

나는 오늘날도 하나님의 집에서 유사한 장면을 봅니다. 목회자들과 교회들은 예언의 경고에 자신들의 귀를 막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정적인 어떤 것을 듣거나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 생각에, 단지 인생을 즐길 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한 때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잃어버린 사랑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사회의 도덕적 무너짐에 대해 슬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기도제목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어가는 민족과 미적지근한 교회에 대해 하나님과 함께 슬퍼하는 데에 아무런 힘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것처럼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아모스 6:6).


3. 하나님은 죄를 숨기지 않고 품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나타내십니다.


다니엘은 주님과 함께 슬퍼하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만지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여, 무엇이 다가오고 있습니까? 이러한 때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내게 보여 주시옵소서. 그래야 내가 주님의 백성들에게 경고할 수 있습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무시를 당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정을 간절히 알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죄를 숨김없이 회개하였습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다니엘 9:4-5).

여기 하나님의 마음에 따르는 누군가가 있다는 또 다른 표시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교회의 죄악과 동일시합니다. 이 종은 그 자신 안에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 안에 모두 거룩함을 부르짖습니다. 교회는 정규적으로 기도 모임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결함이 없다면 그 기도는 정말로 무력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결케 된 입술에서 나와야 합니다.

나는 모든 목사, 모든 교사, 모든 평신도에게 하나님의 만지심에 필사적이 되도록 도전합니다. 그와 함께 하십시오. 중보기도와 더불어 금식하십시오. 그리고 성령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점검하시도록 하십시오. 그분은 당신 안에 숨겨진 악하고, 완고하고, 죄성 강한 모든 것들을 들추어 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불순종한 모든 영역에 대해 당신을 다루실 것입니다.

곧 당신은 당신 자신 안의 위선이나 타협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기도는 거룩함을 구하는 것으로 바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집에 죄를 발견할 때마다, 당신은 “오 주여, 우리가 당신에게 죄를 지었나이다”하고 외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어떻게 만지시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을 바꾸시고, 새 기름을 부으시고, 더 큰 사역을 위해 당신을 준비시키시는 그분의 거룩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예언의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미군의 특수 부대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군대 내에서도 강도 높게 훈련된 군대입니다. 자신을 바친 병사들의 정예 집단입니다. 특수부대는 철저히 지원자들로 구성되며 그들의 상사들에게 통보받고 출동하는 전사들입니다. 들어가고자 한다면 그들은 누구든지 견뎌낼 수 있는 가장 힘든 훈련을 받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에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군 병사들이 유약하고 겁 많고, 산악 전투를 훈련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군대를 물리친 것과 같이 탈레반이 미군을 수치스럽게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예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빈 라덴은 미국의 특수부대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두려움이 없는 부대는 단지 2,000명의 병사들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습니다. 수 일내 이들은 적의 모든 본거지를 점령하였습니다. 갑자기 빈 라덴의 병사들은 이 훈련된 군대의 접근을 보자 떨었습니다. 수 주 후에 탈레반은 전복되었습니다.

세계적인 테러리스트들은 현재 미국의 특수부대의 접근에 두려워 떱니다. 그들은 소단위 부대이지만 나라 전체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미 특수부대는 이미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이 훈련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 도달해있습니다. 그들은 테러리즘의 가장 두려운 적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영적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어떤 것들을 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나는 엄청난 비전을 주시는 성령에 의해 감동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은밀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군대 안의 군대를 일으키시고, 지원자들의 정예부대를 형성하는 그의 정규군을 찾고 계십니다. 이러한 특수 부대는 적과 싸우도록 만지심을 받아 감동받은 용사들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 예로 성서 안에서 사울의 특수 시민군의 모습을 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은 그와 함께 갔어도”(사무엘상 10:26).

하나님의 특수부대들은 오늘날 청년, 중년, 심지어 노년의 사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골방에서 훈련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고통을 경험하였고 인간의 한계를 거의 넘는 것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깨끗케 되고 정결케 되어서 나옵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예수님과의 친밀함은 그들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지금 그들은 산에서든 그리고 계곡에서든 어떤 영적 상태에서든 전투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수부대는 기도를 통해 많은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지옥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곧 전 세계에 걸쳐, 특히 이슬람 국가들에서 하나님의 고도로 훈련된 군대들이 이러한 악의 군대들과 전투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수백만 명의 군대가 필요치 않으십니다. 그의 특수부대는 소수의 인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투에 능합니다. 이 군대의 신앙심 깊고 순종하는 한 사람이 천 명의 적병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작고 나누어진 군대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오늘날까지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여호수아 23:9-10).

우리의 전쟁터는 아프가니스탄도 필리핀도 인도네시아도 아닙니다. 전투가 일어나는 곳은 교회 안에서입니다. 바로 지금, 하나님은 그분의 영적 군대들을 그의 집에 풀어놓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기들은 기도, 정결, 그리고 그의 보좌로부터 곧바로 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병사들의 입술은 하나님의 제단 숯불에 대어집니다. 그들의 혀는 모든 더러움이 제해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육체의 모든 악한 것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사자들이지만 겸손한 어린양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말은 진리, 정결 그리고 신실함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특수부대들에서 많은 병사들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빠르게 배운 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자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합니다. 다른 병사들은 교회의 미적지근함에 질린 중년의 목회자들입니다. 성령님은 그들을 새로워진 열의를 갖은 사람들로 일으키시면서 그의 불로 그들을 만지십니다. 지금 그들은 이미 싸우는 법을 새로운 세대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의 대장 예수를 기다리면서 기도의 골방에서 전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수 년 동안, 사탄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협했습니다. 그것은 큰 사역들, 유명한 설교자들, 거룩한 규범들을 부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으셨습니다. 꾸준히 그는 특수부대들을 훈련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의 교회 안에 그들을 풀어놓으셨습니다. 이 정예부대는 동유럽에서 철의 장막을 무너뜨렸습니다. 그것은 공산주의를 쓰러뜨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것은 아시아에서 죽의 장막을 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 안의 군대는 모든 민족 안에 있습니다. 그것의 활동은 현재 은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곧 우리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이름과 능력으로 행하여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기근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기실 것입니다. 그의 말씀이 모든 것을 정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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