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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d Overanswers Prayer! -

구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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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Wilkerson
November 15,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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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중에 하나는 바로,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신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반쪽 진리에 불과 합니다. 정확히는, "하나님은 기도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신다(God overanswers prayer)!"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여러분 앞에 선 변호사가 되고자 합니다. 그래서 성경전체를 통해서 또 지금 현재까지, 매 세대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의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셨음을 변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구한 것 이상으로 주실 뿐만 아니라, 종종 우리가 구하려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까지도 주십니다.

그럼 먼저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증명을 해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은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심'을 증거하고 있는데, 이 진리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증명되어져 왔습니다.


1. 호세아 14장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넘치게 축복하십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그저 응답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넘치게 응답하신 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예가 있습니다. 호세아가 이스라엘에게 예언합니다. 너희들은 또 타락했건만, 너희는 아직 하나님의 백성이다. 자 이제 주님께로 돌아가라, 그분께 기도하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호 14:2).

이들의 기도는 간단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 간구 했던 것은 단지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그들을 한없는 자비로 받아달라는 것이었지요. "주여, 자비를 베푸시고, 죄를 사하여 주소서, 우리를 당신의 은혜가운데 다시금 받아주소서".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의 죄만 용서하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그들을 깨끗하게 하시고, 그들을 자비로 다시 받으셨을 뿐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복을 더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저희는 곡식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호14:4-7).

자 여기 말씀에, 하늘의 이슬은 주님의 임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이 떠난 이 땅에 가뭄이 계속되어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었지만, 백성들이 진실한 회개와 진정한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은 도처에서 생명의 싹이 돋아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용서받았을 뿐 아니라 부흥까지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자라고 뿌리를 내리고 뻗어 나가서 무성해지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했던 것이라곤 자비와 용서와 용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의 창들을 여시고 그들이 감히 바라지도 못했던 것까지 부어주셨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풍성하고 넘치게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똑 같이 행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회개할 때에 , 여러분들이 구한 것이라곤 정결한 마음과 용서와 평안이었지요. 하지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넘치게 복을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들에게 갈급한 심령을 주시고, 더욱 예수님과 같이 되려는 소망도 주셨지요. 또한 하나님은 여러분께 볼 수 있는 눈을 주셨고,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고, 또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을 향한 사랑 또한 주셨지요.

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 안에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주셨고, 사납게 달려드는 악한 영들로부터 여러분들을 보호하셨으며, 여러분들의 마음을 희망과 기쁨과 즐거움으로 넘치도록 하셨지요.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아침이슬이 되신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들의 영혼에 말씀으로 물대시고, 여러분들은 자라나지요.. 이제 여러분들은 죽었거나 죽어가는 몸이 아니요, 예수님 안에서 생동감이 넘쳐납니다.

자, 여러분들은 단지 구원받도록 또 깨끗함 받도록 구했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넘치는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에 구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도 그가 구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솔로몬왕은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백성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지혜입니다. 제가 그저 백성들에게 공정한 왕이요 군주가 되었으면 합니다". 솔로몬의 이 기도는 하나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요구에 불과했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 솔로몬의 기도에 놀랍게 응답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왕상 3:11-12).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기적이지 않은 기도를 얼마나 넘치게 응답하시기 원하시는지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그저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한 그 분별의 지혜만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인류역사에 그 누구보다도 현명한 자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으셨어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또 말씀하셨습니다. "내고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왕상 3:13-14).

얼마나 기가 막힌 응답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지혜에다가 그 누구도 받지 못했던 축복과 영예와 부까지 더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다가 그의 삶까지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3. 하나님께서는 암몬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셨습니다.


자, 여기 또 넘치게 응답 받았던 기도가 있습니다.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삿 10:9).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바로잡기 위해 암몬을 사용하셨고, 이제 이 암몬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향해 쳐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하나님의 백성들은 당황하고 낙망되어, 그들은 죄를 자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삿 10:15).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 때문에 무척 고통스러워했고, 하나님께 그저 "살려주세요"라는 말 외에는 아무 것도 구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냥 가장 단순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그저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우리가 패하거나 이 원수들에게 짓밟히지만 않게 해주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한 것은 그저 한번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더 주시기를 원하셨고, 그들이 구한 것 이상으로 넘치게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은 보호하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세하게 하셔서, 암몬 사람들을 완전히 정복해버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삿 11:32-3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로 암몬 족속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방법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암몬을 손에 쥐게 되었고, 결코 다시 암몬 족속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완벽한 승리를 얻은 것입니다!

이제 얼마나 하나님께서 오늘날 그의 자녀에게 넘치는 응답 주시기를 원하시는지 아셨지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기도합니다. "주님 제발 이번 싸움에서만 승리하게 해주세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그래 내가 그것을 주지, 하지만 내가 너를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예비해 두었단다! 나는 너의 적을 완전히 눌러서, 네가 그저 한번 승리를 얻고 마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승리를 얻기를 원한단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저 이길 수 있는 힘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적을 정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선 여러분들이 그저 죄를 이기는 정도가 아니라 넉넉하게 이기기를 원하십니다(롬 8:37). 또, 그냥 생명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더 풍성히 얻기를 원하십니다(요 10:10). 그저 기쁜 정도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넘치는 영광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시고, 그저 하루나 한 주, 한 달 뿐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서 여러분들이 두려움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십니다.


4.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생명을 위한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셨습니다.


"저가 생명을 구하매..."(시 21:4).

다윗의 요구는 간단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죽음으로부터 구해줄 것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다윗이 구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생명만을 연장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만드셨으며, 그에게 영광과 권위를 부어주셨습니다. "...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존귀와 위엄으로 저에게 입히시나이다!"(시 21:3,5). 다윗은 외칩니다, "아니 주님, 이게 정말 제게 주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위에 또 '엄청난 기쁨'까지 더하십니다.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시 21:6).

다윗이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고백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합니다. 다윗은 여기서 "주님, 당신은 저의 목숨을 구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의 구속의 은혜를 저에게 넘치게 부어주셨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족장들과 예언자들도 이 하나님의 넉넉하신 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실 때 풍성하고 풍족하며 후하신 분이심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용서를 위한 간구에 넘치는 자비와 용서로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엄청난 복을 기쁘게
주시는 것에 대해서 그리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조차도 가끔 그렇게 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도 무엇인가 남에게 베풀 때에 넘치게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더 하시지 않겠습니까!

수넴 마을의 한 경건한 남편과 아내가 선지자 엘리사가 쓰도록 방을 준비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매우 감사해서 그의 종 게하시를 시켜 물었지요. "이렇게 저희를 위해서 신경을 써주시니 감사한데, 저희가 뭐 도울 일이 없겠습니까?" 그러자 그 여인이 말하기를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게하시가 돌아와 엘리사에게 그녀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엘리사는 무엇인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도 그녀가 내게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게하시가 기억해 내기를, 그녀는 아이가 없어서 아이 가지기를 늘 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엘리야는 바로 그 여인을 불렀습니다.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왕하 4:16).

엘리사는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곧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이 여인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비록 이 여인이 아무 것도 구한 것이 없었고, 그저 마음에 소망이 있었을 뿐인데 응답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문둥병을 치료받았던 나아만 장군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엘리사가 "나는 당신에게서 아무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공짜 선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게하시가 탐욕에 눈이 어두워 나아만에게 가서 말합니다. "엘리사 어른께서 마음을 바꾸셔서, 당신의 은 한 달란트와 두벌의 외투를 가지고 싶어하십니다."

당시에 '은 한 달란트'는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이것은 거의 농장 하나와 맞먹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나아만은 즉시 대답합니다. "...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왕하5:23). 주님께서 나아만을 무척 감동시키셨고, 그는 무척 행복하여서 기꺼이 구한 것 이상 주기를 원했습니다. 왠지 엘리사에게 그렇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 한번 물어봅시다. 어떻게 우리가 구한 것 이상으로 베풀었던 엘리사와 나아만은 믿으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덜 그렇게 하시리라고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흔히 하나님은 인색하신 분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늘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뭔가 그분으로부터 뜯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간구에 넘치게 응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이제 신약으로 가서, 하나님의 그 넘치고 후하신 성품의
더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도록 합시다.


자 예를 들어봅시다.

1. 중풍에 걸려 고생하다가, 침상에 누운채 예수께 운반되어 왔던 남자를 보십시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마 9:2).

이 중풍병자는 예수께 낫기를 구하지만, 예수님은 그가 구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십니다. "...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마 9:2,6).

이 중풍병자는 그저 병 낫기를 구하였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그가 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선물을 더해 주셨으니, 이 중풍병자는 병만 나은 것이 아니라, 죄사함과 영생, 또 그의 수년간의 슬픔을 상쇄하고도 남을 큰 기쁨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가 무엇을 하게될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물론 그가 다시 걷게 될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먼저 복을 주길 원한다. 난 네가 구한 것 이상으로 응답해 주기 원한다. 내가 너의 병든 몸도 물론 치료하겠지만, 그뿐 아니라 내가 너의 영혼과 마음도 치유케 할 것이다. 자, 그러니 이제 너의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

2. 십자가위의 강도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강도는 그저 한가지를 부탁합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

예수님은 이 강도의 요구에도 그 이상으로 응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게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게 넘치게 응답 받은 기도가 아니고 뭡니까! 이 악한 강도는 심지어 구원받으리라는 것조차도 생각지 못했었는데, 이제 그가 몇 시간 후에 눈을 뜨면 낙원에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예수님과 함께!

3.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갈 때 그들에게 구걸하던 절름발이 거지는 어떻습니까?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행3:2-3).

이번에도 단순한 요구지요, 약간의 돈뿐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앉은뱅이가 받은 것은 얼마나 엄청난 복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베드로가 그를 주목하여 보고"(행3:4). 아마 그 거지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25 센트는 주겠지... 아니 일 달러 지폐일지도 몰라..., 아! 오늘은 운수좋은 날이 되는가보다...".

그런데 그 거지가 돈 대신에 얻은 것은 세상의 모든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몸"을 얻게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행3:6-8).

이 거지는 치유되었을 뿐 아니라, 성령의 충만한 부으심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찬양의 영이 그에게 임하였으며, 춤을 추며 경배하였습니다. 이게 바로 '구한 것 이상'으로 주시는 기도가 아닐까요?

4.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늘 열심히 기도하던 사람이었는데, 그의 기도 또한 구한 것 이상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고넬료에게 환상 중에 베드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때 이 백부장은 세명의 종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를 데려오는데, 이는 '말씀을 듣기 위함'이었습니다(행 10:22). '복음을 듣게 하소서', 이것이 바로 고넬료의 유일한 부탁이었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행 10:33).

자,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셨는가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 10:44-46).

마치 하나님께서 너무 기쁘셔서 베드로가 설교를 끝낼 때까지도 기다리시지 못하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오셔서 구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말씀을 들었을 뿐 아니라 성령까지 받았던 것입니다. 이 뿐 입니까? 이들은 방언도 받았고, 거기다가 세례까지 받게되었습니다!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행 10:48).

고넬료가 원했던 것은 단지 복음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령한 것들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신약성경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기도에 구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입증하는 약속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장 우리에게 친숙한 약속은 에베소서 3장 20절입니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우리 중에 겨우 몇몇 만이 그것을 실제로 믿고 있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 3:20).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한 것만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넘치도록 풍성하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도록 행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소망에 따라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풍성함과 능력에 따라서 응답하시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고 풍성하게 응답하신다는 사실은 성경 곳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 2:9-10).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exceeding great and precious promises)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 1:4).

"...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딤전 6:17).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에게 좀 큰 것들을 구하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왕"으로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우리 왕의 위대함에 맞는 커다란 요구들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며, 풍성하게 채워 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크게 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한 유명한 철학자가 알렉산더 대왕을 위해 좋은 일을 하나 하고 그에게 보답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딸들을 위해서 은 100 달란트나 하는 선물 을 구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이 엄청난 요구에 깜짝 놀랐지요. 하지만 알렉산더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요구대로 그에게 주어라. 그것 참 짐의 위상에 딱 맞는 요구로구나. 내 재력과 능력에 합당한 요구로다".

자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작고 보잘것없는 요구로 하나님을 당황시켜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우리는 구하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을 슬프게 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화나게 할 수 도 있습니다.


우리는 "난 그저 주님께 경배만 합니다. 난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아요. 내 은혜가 내게 족하거든요"라고 말하며, 이것이 굉장히 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거룩한 것 같기도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계속 우리에게 간청하십니다, "구하라! 내 이름으로 구하라! 구하면 얻으리라. 무엇이든지 구하라. 네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그분은 구하기 전에 이미 너의 필요를 아신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라 그리하면 그것을 네게 주시리라..."

그러나 우리는 구할 믿음이 없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사 65:24).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에게는 내가 네게 진실로 주고 싶어하는 것을 구할 믿음도 용기도 없구나. 내가 때로는 네가 알아듣도록 징계할 것이다. 또 너의 생각하는 것이 너무 작으니, 네가 구하기 전에 응답할 것이다. 나는 너의 요구가 내가 너를 위해 하려고 하는 일에 미치지도 못함을 안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한지라"(사 7:10-12).

여기서 아하스는 타락한 교회를 의미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고, 그분께서 모든 복의 원천이심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말하지요.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 치료를 위해 구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다"라고 합니다. 그럴 듯하지만 이것은 위선적인 것입니다.

아하스는 그의 믿음이 시험대위에 드러내어 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는 것은 있지 않은 그들의 믿음이 시험되어지는 것이 싫어서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 이스라엘은 구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증해 줄 만한 징조를 구하도록 아하즈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어디서든, 아하스 왕이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징조를 구하라고 초청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즈는 이미 티글랏 필네셀왕과 사마리아에 도움을 요청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죠: "안된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싸울 것이니 나를 좀 신뢰하기를 바란다".

"...들을 찌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사 7:13).

히브리어에 "괴로운(weary)"이라는 말은 "혐오하다(disgust)"와 같은 단어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의 말에 의존하는 것이 두렵다고, 얼마나 더 내가 혐오감을 느끼도록 놓아둘 것이냐?"

이사야는 말합니다: "당신이 징조를 구하지 않는군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쨌든 한 징조를 주실 것이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커다란 응답(overanswer)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자를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만, 하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한 사람을 보낼 터인데 그는 온 인류의 구속자가 되리라". 하나님은 여기서 "임마누엘"을 약속하심으로 구한 것 이상의 응답을 주십니다.

임마누엘 곧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기도에 영화롭고 넘치는 응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완벽한 하나님이시며, 그분 안에 모든 부요와 복이 넘쳐납니다. 또한 그분은 커다란 원천이시고, 그분 안에는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요롭고 풍성함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 3:19).

이 구절은 사무엘의 예언뿐만 아니라 그의 기도까지도 성취되지 않은 것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의 입을 통해서 다시 말하여진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넘치도록 풍성한 열매를 맺는 씨와 같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이 기도의 골방으로 갈 때에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늘 이 말씀을 붙들고 여러분들의 기도에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당신께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이 권능의 하나님이심과, 나의 모든 필요의 원천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저의 상상력을 초월할 만큼 광대하신 분이시지만, 당신을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또한 믿습니다".

하나님께 여러분들의 모든 요구들을 가져오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방법대로 그리고 당신의 시간에 여러분들이 구한 것보다 더 크게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신 다는 사실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자, 여러분 주위에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오늘부터 그 분들의 치유를 위해 간구하기 시작하십시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주위에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친구들이 있습니까?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넘치고 풍성하게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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