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s Square Church Pulpit Series Multilingual Web Site with sermons by David Wilkerson, pastor of Times Square Church, New York City

- Learning Through Afflictions! -

고난을 통해 배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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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Wilkerson
July 17,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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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 무슨 신학이론이지? 라고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실 지도 모릅니다. 고난 받는 것이 정말 내게 유익한가?

여기서 고난에 대한 히브리어를 살펴보면 "위협하는, 문제가 있는, 낮아진, 징벌을 받은, 다친, 겸손해진, 약해진, 풀이 죽은" 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안에 들어있는 의미를 살펴볼 때 "위협하는, 문제가 있는, 낮아진, 징벌을 받은, 다친, 겸손해진, 약해진, 풀이 죽게 되는 것이 내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이것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울 수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구절의 율례라는 말은 "새겨진 법"이라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이런 모든 문제를 경험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러는 중에 하나님께서 내 안에 주의 법과 도를 새겨놓으시기 때문이다."

자,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해 우리 인생가운데 시련을 두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련가운데 둔 첫 번째 목적은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의 문제와 고난은 그분 앞에 올바로 나아가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시편 34:19)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편기자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게 합니다.

제가 고난을 통해 얻은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미국인의 시시한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일주일간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시시하다는 이 단어는 "도량이 좁은, 하찮은"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나는 이 설교에 심혈을 기울였고 이것을 강단에서 강하게 선포하고자 했습니다.

그 설교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 동안 선교사 부부들 중 롤랜드와 하이디 베이커 부부가 보내온 뉴스레터를 읽었습니다. 베이커 부부는 자신들이 이동할 모잠비크의 상황에 대해 썼습니다.

모잠비크는 UN이 지명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들 중 하나입니다. 이곳의 상황은 장기적인 유혈 내전으로 악화되어 있으며 이 나라의 기간산업은 파괴되었습니다. 도로, 다리, 마을, 학교 그리고 병원 등은 훼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은 난민이 되었습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일 만개가 넘는 지뢰가 설치되었으며 상해자와 불구자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겨났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비롯해 어른들도 지나가다 지뢰를 잘못 밟아 터져서 많은 사람들이 겨우 한 두 개의 수족밖에 남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수 천명의 어린아이들이 말라리아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검게 전소된 마을을 헤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헐벗은 채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롤랜드는 최근 남아프리카 출신의 크리스챤들을 소형트럭에 태워서 이 절망적인 나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지급품들을 나누어주며 그 밤 국경을 건너 모임에 참석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국경문이 5시에 닫히기 때문에 일행은 서둘러서 차를 몰았습니다. 그러나 국경까지 약 5마일 정도를 남겨놓고 트럭은 길을 벗어났고 속도도 떨어졌습니다. 운전자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페달을 힘껏 밟았지만 트럭의 속도는 계속 떨어져만 갔습니다. 낙담한 사람들은 자신들 앞으로 다른 차가 지나가는 보았지만 그 차는 결국 멀어져 갔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약 5시 2분전이 되어서야 국경 근처에 있는 고객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그러자 마자 엔진이 곧바로 꺼져버렸습니다. 트럭은 전혀 까딱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행들 모두 "주님, 어찌하여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는지요?"라고 의아해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국경 안내자들이 달려오면서 흥분하여 소리쳤습니다. 잠시 후 헬리콥터가 착륙했고 남아프리카 정부요원 한 명이 내렸습니다. 롤랜드는 그에게 다가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국경 건너에서 폭발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교전중인 적군들 중 하나가 달리던 차를 폭파했습니다."

롤랜드는 부상당하거나 죽은 사람들을 헬리콥터로 실어 나른 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차가 바로 그들 바로 앞에서 달리던 차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트럭 또한 제대로 달렸더라면, 그들 또한 폭탄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롤랜드 일행의 운전자는 시동을 거느라 열쇠를 꽂았습니다, 그러자 트럭은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차는 모잠비크 내에서도 밖에서도 잘 달렸습니다.

엄청나기도 하고 모든 고통을 기록해 놓은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나는 "우리 미국의 크리스챤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고난과 비교나 할 수 있을까?" 이 사람들에게? 우리의 상한 감정과 재정적인 문제를 그들의 잔혹한 시련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우리의 문제는 아주 사소한 것 같고 너무도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작업장에서 "일진이 좋지 않은 날"일 때마다 어깨가 축 쳐져서 웅크리게 됩니다. 그리고서 우리는 "누군가 나를 비방했어!" "상사한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어!" 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야할 신용카드 청구서가 산적해 있을 때 "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지만 나는 여전히 뒤떨어져 있어. 나는 해나갈 수가 없어!"하며 마치 인생이 끝난 것처럼 생각합니다.

많은 신자들은 기가 꺾이고 비관적이며 공포감을 떨쳐낼 수가 없는 무서운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베이커 부부의 뉴스레터를 읽고 난 후, "어느 누군들 자신의 우울함을 기아, 투옥, 불구가 된 신체, 전소된 가정, 살해된 가족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소위 우리가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사소하거나 도량이 좁은 것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강단에 서서 자신들의 감정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상처에 초점을 맞추는 크리스챤들에 대해 단호한 입장으로 설교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우울함으로 고난 받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사람들을 심하게 꾸짖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다른 지역에서는 미국인들이 알지 못하는 방법들로 고통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났을 때 내게 상당히 이질적인 어떤 우울함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깊고 어두운 그러면서 우울한 공포가 엄습해왔습니다. 저는 의아해 한 채 아파트 주위를 걸으면서 "무슨 일이지? 이럴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저는 그런 비탄, 슬픔, 두려움 그리고 자기연민과 같은 감정을 전에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웹스터 사전에 의하면, 공포는 "극도의 낙담"이라고 나와 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무언가를 하고, 어디에 가고,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떤 것을 결정하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공포입니다. 간단히 덧붙이자면, 이것은 분명하고도 오래된 우울증입니다.

저는 이것을 떠나가게 하고자 결심하고 35블럭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사정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속으로 말했습니다, "주님, 여기에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까? 나는 하찮고 사소한 우울함이 모잠비크 내에서의 문제와 어떻게 비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설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제 우울함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파트로 다시 돌아왔을 때, 저는 울기 시작했고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왜 우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상당히 중대하구나! 저는 큰 목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오, 주님, 너무 너무 아픕니다.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나를 구해주세요 - 나를 인도해 주세요!"

그때 하나님은 저를 인도해 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제가 이것으로부터 배운 것이 있기 때문에 제게 유익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저는 제가 강단에 서서 사람들의 우울함에 대해 누군가를 호되게 꾸짖을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울함이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는 고통스러운 이런 실제적인 우울함이 어떻게 되야 하는지를 상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많은 크리스챤들이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 동안 견뎌야 하는 것을 단 하루만 맛보았을 뿐입니다.

또한, 우리 하늘의 아버지가 우리의 연약함이 어떻든 상관없이 우리의 약한 마음을 만지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굶주리거나 가정이 없거나 우울하다 해도 이 모든 것이 그 분께는 중요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자녀들에 대해 관심을 갖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고통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제가 고난을 통해 배운 것 중 몇 가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며 그 첫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여러분은 어떤 고난으로부터도
여러분 자신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안에 어떠한 문제가 있다해도 여러분은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고난으로부터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 지를 이해하려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종의 신분에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알아보면 그 비밀이 보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린도전서 10:11).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6절).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 - 그들의 종의 신분, 시련, 애굽으로부터의 인도함 - 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증거이자 본보기이며 거울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물리적인 인도는 우리가 바라 보아야 할 영적인 인도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로 밑에서 종의 신분으로 있는 동안 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어쨌든,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짚 없이 벽돌을 만들게 하며 불가능한 것을 하게 하였으며 간역자들이 그들을 때리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왜 자신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이것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인력을 가졌었습니다 - 특히 열 개의 재앙 후에, 애굽은 황폐해지고 약하며 비통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바로가 떠날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출애굽기 1:9).

이전에 폭동을 한번도 일으킨 적이 없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음과 같이 소리쳤습니다. "이제 더 이상 종이 아니구나!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무시무시한 구속 가운데 두었었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한 번도 폭동을 일으키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이것을 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인도하기 위해 내가 내려왔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을 위해 행하실 그분의 역사 하심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출애굽기 3:7-8).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의 우고를 알고..."라고 명확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가운데 위로가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겪어야 하고 느껴야할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이것은 너의 싸움이 아니다. 너의 간역자 즉 사단은 네겐 너무 강하다. 그래서 내가 너를 인도하기 위해 내려왔노라!"

" ...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임을 알지라 ... "(출애굽기 6:6-8)

여러분은 꿈꾸고 계획하고 만들어서 여러분 자신을 인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 하니이다"(예레미야 10:23).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공격할 때, 그는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사무엘상 17:47)라고 말했습니다.

성서는 " ...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50절)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손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나는 이를 악물고 견딜 것이며 이것을 내 자신의 힘으로 이룰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싸움이 주께 속해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떠한 싸움에서도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압박감들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인도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뜻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이 약속한 것을 행하도록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 그분을 신뢰하는데 핵심적인 것이 있습니다.

"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지라 ..."(출애굽기 6: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이스라엘을 어떻게 기적적으로 인도하였는지를 보라. 나는 골리앗을 죽였으며 내가 이스라엘과 다윗에게 여호와임을 보였노라. 그러나 나는 너에게 전능한 하나님이기를 원하노라! 나는 네가 나의 기적적인 인도를 받길 원하노라, 그러면 너도 그들이 했던 것처럼 증명할 수 있느니라. 나는 너의 살아있을 동안 너의 고난에 대해 너의 하나님이니라!"

하나님은 여러분의 고난 중 어느 것도 하찮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최근 뉴욕 신문들 중 하나에 난 기사가 떠오릅니다. "강경한 사랑 - 아버지, 마약남용으로부터 자신의 어린 아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의 첫아이를 쏘다"

39살의 아버지에게는 마약에 빠져있는 20살 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마리화나를 피우기 위해 16살 된 남동생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런 상황에 필사적인 아버지는 총을 들고 20살 난 아들의 가슴과 입에 총을 쏘았습니다.

이 남자는 자살하려고 즉시 벽장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습니다, 그의 아들은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때 어린 아들이 재빠르게 벽장으로 뛰어들어서 자살하려는 아버지를 구했습니다.

나중에, 첫째 아들은 병원으로 옮겨져서 회복되었으며 아버지에게 "그 일로 인해 제가 깨어났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사죄하였습니다.

이 필사적인 남자는 마약으로 한 아들을 잃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끔찍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압박감으로 "나는 이 것 외에는 달리 취할 방도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도 중대한 것입니다. 이젠 잘못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쏜 것이 옳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오히려 저는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만이 진정한 인도가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압박감으로부터 스스로를 건질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여러분을 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것을 여러분에게 행하고 싶어하십니다!

다음은 우리의 고난으로부터 배우는 두 번째의 것입니다.


2. 고난은 우리를 주께로
나아가게 합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우리의 문제와 걱정거리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 할 수 있게 무릎을 꿇도록 가르칩니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시편 77:2).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편 119:67). "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역대하 33:12).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시편 119:75).

마지막 구절에서 다윗은 주여, 주께서 제게 왜 환난을 당하게 하셨는지를 알겠습니다. 주는 모든 것이 형통할 때 저의 부주의로 길을 잃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게 문제를 두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무릎을 꿇고 다시금 낙담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나의 이 환난은 나를 향한 주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 ...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출애굽기 2:23).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환난으로 부르짖을 때마다 움직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관해 무언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 우리가 아파할 때 하나님께서도 아파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환난을 아십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이사야 63:9).

이스라엘 자손이 환난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비탄가운데 있을 때조차 함께 하셨습니다, " ...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사사기 10:16).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자신들을 묶고있는 마약, 음주, 흡연 등과 싸워야 합니다. 그들의 삶에는 지독한 유혹의 습관이 매일매일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제 그런 모든 사람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돌보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겪고있는 고통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분만이 당신을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으로 하여금 모든 싸움에서 십자가로 달려가 부르짖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시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는 네가 한 행동으로 인해 비참하여 졌다. 너는 나를 저버렸으며 지금 너는 그 대가를 받고 있다. 나는 여기 앉아서 네가 충분히 아파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런 후에 내가 너를 구하겠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 여러분은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비통해 하는 순간 그 비통함을 느끼시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고난가운데 있다 해도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아파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그렇게 낙담해 하는 것을 보시고 슬퍼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여러분을 인도하는 것 이상의 것을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조금도 도와주지 않으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여러분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그분은 행하십니다! 이것을 여러분에게 증거해 보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야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출애굽기 2:24-25). 여기서 이 말씀은 "그분은 행동하기 시작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그들 편에서 행동을 취하셨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자 마자, 여호와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초점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무릎을 꿇을 때마다 하나님은 즉시 행동을 취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알지 못했으며 여전히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그들이 여전히 종의 신분에서 부르짖으며 이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여기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인도할 사람을 세우시고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여러분이 부르짖을 때 가장 먼저 들으시고 즉시 인도하기 시작하십니다. 사실, 그분의 응답은 지금도 여러분에게 응답되고 있습니다.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시편 34:17).

여기 세 번째가 있습니다.


3. 인도함을 받기 직전의
고통은 더욱 격심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깨뜨릴 수 없는 인도함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적을 행하며 이 말씀을 백성들에게 들고 나갔으며 그들이 그것을 믿었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출애굽기 4:29-31).

이때 그들에게는 희망과 기쁨이 있었으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할렐루야 - 우리는 마침내 자유다! 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으며 우리를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그를 찬양하라!"

그런데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정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는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짚 없이 벽돌을 만들어야 했으며 그들의 간역자들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하며 화를 내었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심한 상황의 반전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는 부르짖기를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이러한 방법으로 다루시나이까? 주님은 우리를 조금도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이전보다 더 나빠졌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것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이해해야만 합니다 - 악마는 이스라엘 자손의 인도함이 바로 코앞에 와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방관하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마지막 공격 한 번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사단은 자기 자신에게 "나는 시간이 좀 남아있어, 그래서 나는 그들 모두를 지옥으로 보내버리겠어! 나는 바로를 화나게 하고 간역자들을 채찍할거야.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죽도록 패주겠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더욱더 나빠진 상황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악마가 인도함의 시간이 다가 오기 전에 그의 일을 서둘러서 미친 듯이 달려들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악마는 여러분이 무릎 꿇는 것을 볼 때마다, 여러분의 인도하심이 코앞에 와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악마는 승리가 오기전의 마지막 순간에 그냥 방관하고만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악마는 여러분을 더욱 강렬하게 유혹할 것입니다. 악마는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 맹렬히 노하게 할 것입니다. 악마는 여러분을 거짓되게 고발하는 거짓의 영을 보낼 것입니다. 악마는 하나님이 그분의 성령을 여러분한테서 취하고 있으며 여러분이 과거의 죄에 대해 대가를 받는다고 거짓말할 것입니다. 악마는 여러분에게 온갖 종류의 범죄와 비난을 퍼부어 댈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욱더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에 대해 광폭하게 구는 화가 난 악마는 여러분의 인도함이 바로 문 앞에 와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기도하고 있다면, 사정이 더 나빠지는 것 외에도 여러분의 인도함이 이제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에 기쁘게 됩니다.

모세는 그 이튿날, 주께서 손수 담당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출애굽기 6:1-2). 여호와께서 "내가 너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다.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기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너무 처참해져 있었고 너무 지쳐있었습니다.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모세를 듣지 아니하였더라"(9절). 백성들은 영적으로 죽어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는 그 동안 너무나 많이 들어왔어요. 더 이상 인도함의 말씀을 듣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면서 포기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퇴유곡에 빠져 여러분을 그렇게 낙담 시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갈 때, 설교 말씀이 한쪽 귀로 들어와서 한쪽 귀로 나갑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상황을 이해하십니다, 그분은 인내심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적들을 대적하시는 하나님을 곧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을 격려하십니다. "계속해! 그러는 중에 너는 나를 곧 보게 될 것이다. 너의 적들이 괴롭힐 때 너는 축복을 받고 은혜를 얻을 것이니라!"

고난을 통해 배우게 되는 마지막 네 번째입니다.


4. 하나님은 보석을 위해
일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고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들어보겠습니다.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첩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기쁨의 돌)으로 꾸밀 것이며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이사야 54:11-14).

얼마나 놀라운 예언입니까! 12절의 "기쁨의 돌"은 보석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보석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다면, 다이아몬드가 한때는 한 줌의 석탄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원소로 되는 데는 몇 년의 세월이 걸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고난 받음은 너를 내게 값지고 아름다운 어떤 것으로 바꾼다는 것을 의미하느니라!"

여기서 "홍보석의 성첩"은 불로 투명하게 만든 석영의 일종을 의미합니다. "첩(창)"의 모습은 눈 또는 비전으로 의미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고난을 통해 그를 신뢰하는 것이 여러분의 명확한 비젼과 통찰력을 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수정의 투명성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십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석류석의 성문"을 더 정확히 말해 "진주 문"으로 보고있습니다. 진주는 조개의 위에서 모래 알갱이에 의해 형성됩니다. 알갱이는 진주가 되기 전까지 액체상태의 뭉개진 상태로 상처가 생긴 상태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뭉개지고 상처가 생기고 마찰을 가져오고 있는 것들을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여전히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하고 계십니까? 그분은 진주를 만들고 계십니다! 모든 진주는 고통, 아픔, 그리고 마찰의 증거입니다.

나는 이사야가 말하고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바로 이것의 통과에 관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 고난의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할 때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성품의 아름다움을 밖으로 발산하게 합니다. 이것은 더욱 더 예수를 닮아가게 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요한은 거룩한 성을 묘사하고 있는데 즉,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를 말합니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요한계시록 21:18-19).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정이라"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요한계시록 21:19-21).

이런 각색 보석들은 무엇입니까? 그것들은 하나님의 고난을 받은 것들입니다 - 폭풍우로 내동댕이쳐지고 사람에 의한 안정감이 아니라 불로 시험 받고 마찰로 마멸되며 신앙으로 인도된 것이며 영의 보석으로 회개하고 깨어진 자취입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 ...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돌이라 ... "(이사야 28:16). 이것은 헬러어로 "시련아래 둔 돌"이라는 의미입니다.

성서는 예수가 시험 당한 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로 시험 당한 다른 돌들 외에는 이 기초 위에 세워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발하는 밝은 빛은 예수의 빛나는 신성으로 비춰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사람이 참고 견딜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자신의 거룩한 성을 꾸밀 귀한 보석으로 만드시고 다듬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밝고 거룩한 빛으로서 만이 어두운 부분 없이 우리 삶에 투명하고 맑은 눈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제가 되는 구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고난 당할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이 말씀으로 지금 기뻐하실 수 있겠습니까?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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