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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땅: 거룩하게 되는 유일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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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Wilkerson
January 26,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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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은 신약에 드러난 진리의 그림자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신약의 진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구약의 예시를 돌아봅니다. 사실 저는 신약을 믿는 이들을 위한 꼭맞는 진리로 가득 차지 않은 구약의 이야기나 사건은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사이셨던 저의 할아버지는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데이빗, 인격에 대해 가르치고자 한다면 구약을 보거라. 인격에 대한 모든 가르침이 거기 있거든." 저는 그가 옳았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예가 되는 것이 불타는 떨기나무 가의 모세에 관한 구절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다소 깊이 조사해보고 싶습니다. 그 구절이 거룩이라는 주제에 관한 심오한 신약의 진리로 가득 차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거룩하게 되는가?"라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신약에 의하면 우리는 "심지어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찌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5-16)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도록 지음을 받았다고 쓰여지고 기록되었고 영원히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에베소서 1:4) 바울은 "창조시부터 우리는 거룩하고 흠 없이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고린도전서 1:2) 여기에 쓰인 "성도"라는 뜻의 그리스어는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안에 있다면 여러분은 거룩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데살로니가전서 4:7)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를 구원, 천국, 죄용서를 받으라고만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부르신 진실한 부르심- 그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한 것-의 유익한 점들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자 한사람 한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도록 즉 하나님 보시기에 순결하고 흠이 없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만약 거듭났다면 거룩은 반드시 여러분의 마음의 외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예수님처럼 거룩해지기 원합니다. 저는 제 평생동안 당신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 신약의 말씀들을 읽을 때 여러분은 놀랄지도 모릅니다. "제가 예수님처럼 거룩해져야 한다구요? 불가능해요! 그분은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완벽한 분이셨어요. 어떤 사람이 그 수준에 맞게 살 수 있겠어요? 게다가 성경도 이르기를 '주밖에는 거룩한 이가 없다'고 쓰여있지 않나요?"

그것이 바로 율법의 목적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의 기준에 다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의지력이 강하고 힘과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그것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밖에 거룩한 이가 없다면 우리가 거룩해 질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의 거룩하심이 우리의 거룩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뿌리가 거룩한 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로마서 11:16) 바울은 뿌리이신 예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가지인 우리도 또한 거룩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기록하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한복음 15:5)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거룩하심의 공로로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만을 거룩하다고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야에는 역사를 통틀어 두 명의 대표적인 사람들만 존재해 왔습니다. 첫째는 문자 그대로의 아담이요 둘째는 둘째 아담 즉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전 인류는 첫째 아담에 휩싸였습니다. 그가 범죄 했을 때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새로운 인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그분의 순종을 통해 모든 인류는 잠정적으로 그분 안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이 한 사람 예수님만을 거룩하다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진정 거룩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으로부터 멀어진 아담과 같이 우리는 결코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아무리 많은 기도를 한다고 해도 아무리 자주 성경말씀을 읽는다 해도 아무리 많은 정욕을 다스린다 해도 우리는 결코 완전히 거룩해 질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모든 율법을 다 지키지 못했다면, 단 한번의 악한 생각을 했다면 우리는 전 율법을 범한 것이 될 거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해지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은 뛰어나십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 서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받아들이셨다면 그 사람은 분명 그리스도 안에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다른 사람을 인식하지 않으십니다. (감사하게도 그분의 그러한 성품은 우리의 "옛사람", 우리 안에 죽은 죄인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떤 공로나 자격 없이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그것은 가능합니다.

우리가 비밀스런 골방에 들어갈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만 합니다."주님, 그리스도 외에는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가져올 것, 나 자신의 공로도 거룩함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당신께 나아옵니다. 나는 주님의 거룩하심을 구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당신 앞에 죄 없이 설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흠 없고 거룩한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한 몸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몸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린도전서 12:27)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분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한 사람의 일부로서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로마서 12:5)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무덤에서 새사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십자가에 매달린 때부터 회개하고 이 새사람을 믿는 모든 자들은 그분 안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 뿐 아니요 여럿이라"(고린도전서 12:13-14)

흑인, 백인, 황색인, 유대인, 회교도 또는 이방인은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몸에서 났습니다. 한 새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간은 더 이상 율법이나 계명을 지킴으로 거룩해 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행, 의로운 행위 그리고 인간의 노력이나 육체의 열심으로 인간은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에베소서 2:15-16)

하나님 아버지는 단 한 사람만을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새로운, 부활한 사람 말입니다! 그리고 이 새사람이 아버지께 아버지를 믿는 믿음을 올려드렸을 때 아버지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나는 너희 모두를 거룩하다고 인정한다. 너희들이 거룩한 내 아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1:6)

게다가 우리는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1:10, 13)

그러므로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거룩은 우리가 행하거나 획득하거나 차차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이란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믿음을 가지고 그분 안에 머무를 때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다 인정하십니다. 거룩으로 인도하는 길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하면 거룩해질 수 있을까를 갈망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갈급한 외침에 대한 하나님의 훌륭한 대답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거룩을 의지할 때에만 우리는 거룩합니다! 우리의 거룩은 그분의 거룩입니다. 그 거룩은 뿌리로부터 가지인 우리에게 흐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거룩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교회가 항상 그대로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사람들은 거룩을 외적인 행동으로 생각합니다.

목사였던 나의 할아버지가 좋은 예가 되십니다. 그는 초기 거룩운동이 있던 때 나자렛 교파의 목사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자에 새의 깃털을 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주머니에 작은 금으로 된 가위를 늘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제단 앞에 나와 고개를 숙이면 그 깃털을 싹둑 잘라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담배를 씹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거룩하지 못한 것이라는 금기사항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심지어 강대상 옆에 조그만 통을 놓고는 설교를 하다가도 고개를 돌려 담배를 씹으면 나온 즙을 뱃어내곤 했습니다. 립스틱을 바른 여자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설교를 하면서 말입니다.

나는 '거룩'교파의 목사들은 화장을 하거나 어떤 특정한 종류의 옷을 입거나 머리를 길게 기른 여자들을 꾸짖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들을 거룩의 문제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 목사들은 그 누구보다도 악한 험담꾼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주시는 거룩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매우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외적인 인간을 다루실 것입니다. 검소하게 그리고 단정하게 꾸밀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회개를 통해서 그런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거룩하게 되는 법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서 있는 모세의 이야기 구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이 이야기를 읽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상한 광경에 모세가 그의 모든 신경을 빼앗겼을 때 모세는 장인의 양을 치면서 호렙산에 완전히 혼자 있었습니다. 떨기나무가 환하게 타고 있었습니다. 그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음에도 그것은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더 가까이 가서 자세히 관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까이 발을 내디뎠을 때 하나님께서 그 덤불 속에서 그에게 외치셨습니다.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출애굽기 3:3-4)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나무가 타고 있었지만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시각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정말로 어느 곳이든 그분이 계시면 그곳은 거룩합니다.

그때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5절) 우리 대부분은 이 구절의 엄청나게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 구절을 넘어가 버립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 "네 신을 벗으라"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수많은 상반되는 견해를 들어왔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말하기를 "너의 자존심을 버리라"는 뜻이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너의 오만함을 버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이 구절이 이러한 두 가지 견해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분명 오늘 메시지의 주제 즉 거룩해지는 법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는 그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 즉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는 부르심을 지금 받으려고 하는 순간에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어떠한 땅, 기초 위에서 하나님께 접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땅이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는 교제가운데로 부르심을 받고 있었으며 그는 그것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을 때 두려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6절) 그러나 성경은 이 사람이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한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모세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었을까요? 무엇이 그를 하나님의 존전에서 두려워 얼굴을 숨겼던 사람에서 자유롭게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한 후 얼굴이 밝게 빛났던 사람으로 변화시켰을까요?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께 접근해야하는 바로 그 땅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과 일치하는 신약의 진리는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9) 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신약의 진리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세 시대에도 진리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그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힘으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의지로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을 철저하게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의 육체가 하나님보다 의지하도록 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내게 다가올 수 있는 유일한 땅이 있다. 그것은 거룩한 땅이다. 너희는 너희 육체를 믿지 말아라. 나의 존전 앞에 설 육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왜 하나님은 이 이야기에서 신발에 초점을 맞추고 계신 걸까요? 그것이 육체를 제어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의 발은 우리 신체의 가장 예민한 부분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발을 보호하는 것 외에 신발을 쓸데가 어디에 있습니까? 신발은 우리를 폭풍우, 돌, 뱀 그리고 오물과 흙, 뜨거운 포장된 도로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바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영적인 교훈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나중에 동전, 진주, 낙타, 겨자씨등을 사용하시며 가르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너는 너의 육체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복을 입고 있다. 그러나 내가 너를 보내려고 하는 곳에서는 아무리 네가 육적으로 방어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너를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너는 구원의 기적을 필요로 할 것이다."

"나는 너를 죄의 소굴 애굽으로 보내겠다. 너는 마음이 굳어진 독재자와 맞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오로지 나만이 구원할 수 있는 상황가운데 놓여지게 될 것이다. 네가 너의 모든 육체를 의뢰하는 것, 너의 온유함, 열망, 겸손 등을 버리지 아니하면 너는 내가 너를 불러 시키는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거룩하게 하지 않는 한 너의 모든 능력은 소용없는 것이 될 것이다. 너는 완전히 나의 이름과 능력만을 신뢰해야 할 것이다."

정말로 모세는 각종 시험과 고난을 겪을 것이었습니다. 그는 약 3백만명의 사람들을 식품점도, 백화점도 심지어는 샘물도 없는 사막으로 인도할 것이었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해야만 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모세가 이미 육체의 힘으로 구원자가 되려고 했었던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40년 전 그는 손에 칼을 들고 노예들을 학대하는 잔학한 이집트인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야, 너의 열정은 거룩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그 열정으로 너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제 기꺼이 너의 칼을 내려놓고 나의 칼을 신뢰하겠느냐? 이제 너의 능과 힘으로 구원자가 되려고 하는 모든 너의 희망을 버리겠느냐? 내 뜻을 행하겠다는 네 육체의 모든 자신감을 버리겠느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은
완전히 하늘에 속한 것이며
모든 인간의 힘으로 성취함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 누구도 우리 자신의 힘이나 의지로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시는 거룩을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거룩해지는데는 단 하나의 길밖에 없으며 그리스도인의 예배가운데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데는 하나의 원칙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다가가 말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드릴게 없습니다. 당신께서 그 모든 것을 행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정욕과 악한 열망으로부터 자유하면서 여전히 거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훌륭한 사람, 사랑스러운 배우자, 곧고 정직한 사람이면서도 여전히 거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도리어 이러한 모든 인간의 선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러운 쓰레기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나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한다면 나는 거룩하게 살 수 있을거야" 그래서 우리는 손에 칼을 듭니다. 의지의 칼, 약속의 칼, 선한 의도의 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승리를 얻으려고 우리 마음에 있는 적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자기 의의 기초 위에서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육체의 신은 벗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내가 아주 싫어하는 복음성가를 불렀습니다. 그 가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를 용서하소서 주님, 내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소서" 그렇지 않습니다. 그 가사는 신학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그렇게 큰 위험가운데 처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만일 그런 시행착오에 달려있다면 우리들 중 아무도 천국에 이를 자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모세가 직면했던 바로 그 떨기나무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는 거룩한 것으로 가장하여 하나님의 존전 앞에 가져오는 모든 육체적인 것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불같은 열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런 육체적인 땅위에서, 육체적인 기반을 가지고 내 앞에 설 수 없다. 거룩한 땅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아들과 십자가에서의 그의 공로를 믿는 믿음이다."

이것이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전 세계를 구원하시고 화목케 하셨던 유일한 길입니다. 만약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는다면 몇몇의 수만이 구원을 위한 후보로 선택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는 무제한적인 속죄의 원리를 믿습니다.

조지 오웬과 같이 내가 좋아하는 많은 청교도 작가들은 저와 반대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가르친 원리에 따르면 "선택"이란 하나님께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그의 나라를 위해 택하시고 모든 다른 사람들은 저주를 받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가르침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도리어 저는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공로를 통하여 전 세계는 잠재적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드는 자, 회개하는 자, 그리고 믿음으로 돌이키는 자마다 그 안에 거하고 그의 몸의 일부와 지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중 가장 악한 자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가장 악한 절도자, 강간범, 살인자, 마약중독자 또는 알콜중독자들 등 선한 행위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을 보고도 "회개와 믿음으로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롭다 인정을 받았다."고 증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행위가 충분한 것처럼 살아갑니다. 심판의 날에 그들은 육체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서서 말할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 한 모든 일을 보십시오, 주님. 나는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하기 위해 수고해 왔습니다. 나는 예언하였고, 가난한 자를 먹였으며, 병든 자를 고쳐주었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를 알지 못하노라. 너는 올바른 땅위에 서 있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너는 결코 너의 신발을 벗고 육체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너는 이러한 일 중 어느 것도 나의 성령의 힘으로 행하지 않았다. 너는 그 모든 것을 네 힘으로 행하였다. 그러한 것들은 내 코에는 악취와 같은 것이다. 나는 단 한 사람 내 아들의 의만을 인정한다. 네 안에는 나의 아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없구나. 너는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린도전서 1:30-31)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어떤 사람도 내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겠다. 그들은 매일 그들의 지혜와 의와 거룩이 되는 나의 아들을 통해서만 나를 영화롭게 하고 자랑할 것이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데는 하나의
근거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하고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의 의미는 그의 구원의 능력을 신뢰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 능력을 언제나 유지하고 계신다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삶과 일치하도록 만드실 것, 즉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지키실 것이라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한때 여러분은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고 악한 행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겼습니다. 그래서 그분과의 관계를 바로 잡기 위해 여러분은 어떤 선한 일을 했습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믿음으로, "네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가 거룩한 것처럼 너도 거룩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그리스도의 거룩가운데로 인도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믿음의 행보에 합당한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믿음의 행보를 걷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그렇게 행하기 위해서도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게 하시는 성령을 주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골로새서 1:21-23)

"만일 여러분이 믿음에 굳게 서서..."라는 구절에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계속해서 나를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기만 하거라. 나는 아버지 앞에서 너희를 깨끗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육체의 행실을 억제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실 때 그분의 확신과 위로로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거룩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거룩 말입니다. 어떠한 그리스도인도 "그분보다 더 거룩할" 수 없습니다. 거룩에는 급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의 성숙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아기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거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여러분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기준에 의해 측정됩니다. 그리스도의 거룩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의 거룩은 똑같이 우리의 거룩이 됩니다.

결코 다른 그리스도인 리더나 평신도를 보고 "아 나도 저사람 처럼 거룩해졌으면 좋겠어."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사람들이 받았던 훈련을 못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들과 같은 기도생활을 하고 있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는데도 더 많은 실수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하나님께 그 사람들과 똑같이 인정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여러분보다 더 사랑스러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을 벗으십시오. 육체를 신뢰하기를 버리십시오. 여러분이 살아가야 할 땅은 이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되었다. 나는 그 분의 몸의 지체요 일부이다. 그리고 내 아버지께서 나를 거룩하게 보신다. 왜냐하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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