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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Only Hope in The Coming Storm! -

다가올 폭풍 속의 유일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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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Wilkerson
March 30,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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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에게 마지막 시대에 자신이 그의 백성들에게 사면에서 불성곽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스가랴 2:5).

동일하게 이사야 선지자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환난 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이사야 25:4).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4:6).

이러한 약속들은 모든 선지자들이 마지막 시대에 거대한 폭풍이 닥쳐올 것을 경고하고 있으므로 미리 우리에게 안위를 주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 폭풍은 하나님의 보호벽을 강렬하게 칠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님도 이 다가올 폭풍이 너무나 무섭고 거대해서 폭풍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에 사람들의 마음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21:26을 보십시오) 자, 만약 예수님께서 이 폭풍이 매우 사나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때가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계획하시는 바를 선지자들에게 먼저 드러내시지 않고는 어떤 사회도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아모스 3:7).

이 말씀은 자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의 예언서를 세밀히 공부해 본다면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이렇게 행하셨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임박한 심판의 폭풍 직전 그분은 항상 백성들에게 주님께로 돌아올 것을 경고하라고 선지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빙자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호세아 12:10).

게다가 신실하게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격노의 심판이 임하기 바로 전 아직 평안하고 부유한 때에 말씀을 주십니다. 아직은 폭풍의 구름이 생성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온 땅에 예언의 목소리를 일으키십니다. 말씀에 의하면 죄악이 가득한 어떤 나라가 번영하고 평화로울 때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에게 평화와 번영의 때가 곧 끝날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그 때에는 예루살렘과 사면 읍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스가랴 7:7).

때때로 하나님은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주셨고 자신의 대변인에게 쓰라리고 타는 듯한 경고를 내릴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호세아 6:5). 다시 말하면 이렇습니다. "나의 가져올 말은 너무나 명백해서 너희들의 마음이 열리기만 한다면 그 말로 인해 죽을 것이다. 나의 말은 너희들로 땅에 엎드려 회개하게 할 것이다!"

다시 그분께 돌아오라고 우리를 사랑스럽게 부르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목적은 그러한 폭풍이 일 때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경고를 하실 때 백성들이 종종 듣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듣지 아니하니라"(역대하 24:19).

거의 항상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러한 경고에 짜증을 냈습니다. 어느 선지자가 다가올 폭풍에 관해서 여러 해에 걸쳐 외치나 세상은 계속해서 번영하고 평화로울 때는 특별히 더 그러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자 백성들은 선지자의 목소리에 아주 신경을 꺼버렸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더 이상 듣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한 예를 이사야 선지자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사야에게 말했습니다. "…선견하지 말라…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이사야 30:10).

여러분은 여러분이 직접 그런 상태 가운데로 빠져드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 백성들은 이사야가 진리(거대한 폭풍이 다가온다는 사실)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야기를 듣는 데 싫증이 났습니다! 그들은 "부드러운 것"을 듣기를 더 원했습니다. 여기서 "부드러운"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즐거운, 안정된"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이사야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현상태를 뒤엎거나 걱정스럽게 만드는 어떤 것도 우리에게 선포하지 마시오!"

바로 이 상태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운데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예수님께 헌신해 왔던 성도들이 요즘 폭력, 재앙, 굶주림, 범죄, 부도덕이 더욱 더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뿐인데도 TV 앞에만 앉아 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의 생각은 그 넘쳐나는 나쁜 뉴스들에 질려버리고 마음은 굳어지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최악의 뉴스보도조차 "단순한 또 다른 하나의 뉴스"일 뿐입니다.

저는 종종 의아해 하곤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나쁜 뉴스라는 나쁜 뉴스는 이미 다 들어보았는데. 앞으로 우리가 충격을 받을만한 재난이나 재앙이 더 남아 있을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이런 반응을 할 때마다 질겁을 하십니다. 우리는 에스겔 선지자의 경고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예언을 했을 때 이스라엘은 부유했으며 주변국들과도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에스겔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고 그 권능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무하여 지나갈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한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면 그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라"(에스겔 33:28-29).

그 선지자는 여남은 해 동안 사방으로 다니며 하나님의 경고를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의 말을 듣는데 싫증이 났습니다. 결국 여러 해가 지나도록 에스겔의 말 중에 일어난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그 나라는 더욱 더 번창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에스겔의 예언은 백성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없는 곳에서 욕을 해댔습니다. 아마도 제가 여러 해 동안 들어온 것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불길한 최후 심판 설교자", "웃을 줄 모르는 자", "나쁜 뉴스만 전하는 앵커" 등등. 마침내 에스겔은 지쳤습니다. "주님, 주께서 나를 속이셨습니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저를 조롱합니다!".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에스겔 33:30-33).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벌써 그런 얘긴 다 들었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라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스스로 외쳤던 상태에 이른 적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조심하십시오!


과거에 모든 사회와 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도 나쁜 소식을 받을 마음이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가올 폭풍에 대한 경고의 예언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정말로 오늘날 미국의 교회는 역사상 가장 뻔뻔하게 "평화롭다고 느끼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단지 폭풍 전야의 고요함을 경험하고 있을 뿐입니다.

모세가 산 위에서 40일을 보내는 동안 이스라엘은 무법의 상태에 빠졌습니다. 백성들은 먹고 마시고 스스로 평안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모든 경건함을 버렸습니다. 여러분도 그 결과는 아실 것입니다. 결국 그 최후는 금으로 된 송아지 곁에서 벌거벗고 술에 취하는 방탕의 극치뿐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수천, 수만 명씩 그리스도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모든 규율과 법도를 내던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분이 기독교 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많은 책과 잡지마다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영적인 지도자들이 "편안히 쉬십시오! 하나님은 엄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자녀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원하십니다. 아무도 여러분의 즐거움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십시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3 년 전에 어느 카리스마적인 거대한 교회의 목사님 세분이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위대한 부흥을 일으키시기 위해 록큰롤과 랩 음악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심지어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성령님께 열도록 비틀즈를 사용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그 젊은이들은 섹스와 마약을 찬양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성령의 역사 하심일 수 있겠습니까?

어느 기독교 잡지는 앞으로 일어날 교회의 부흥은 춤과 "알코올성" 음료, 그리고 코미디언들로 이루어진 예배를 포함한 "나이트클럽식" 접근법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저에게 이러한 일이 온 영국과 유럽에 걸쳐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스스로 나이트클럽화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미국에서는 많은 "죄에 관대한" 교회들이 아침 예배동안 커피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은 다리를 뻗어 의자 위에 올려놓고 예배를 드리는 동안 한번도 일어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교회 중 한군데에서 어느 초청 복음성가 가수가 죄나 그리스도의 피에 관해 언급하는 어떤 찬양도 부르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찬양이 교회에 온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교회의 지도자는 죄인들을 위한 "안락 지대"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벌거벗은 채 금으로 만든 우상을 돌며 춤추는 것을 생각하기가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와 똑 같은 일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머지 않아 우리는 지옥의 구덩이에서 탄생한 음탕하고 감각적이며 신성모독적인 모양을 가진 종교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 이상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때가 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교회는 부끄러워 할 줄 모릅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이미 듣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하실 지도 모릅니다. '왜 그렇게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속고 있죠? 왜 하나님의 집에 그렇게도 분별력이 없나요? 그토록 기괴하고 세속적인 집회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이유가 뭔가요?' 저는 그 답을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 8:11). 이 구절에서 말씀을 선포함이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그분의 경고를 교회들에게 숨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리를 전하라고 하나님은 그분의 선지자, 교사, 전도자를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아모스의 예언은 오늘날 우리가 듣는 얄팍하고 가벼운 설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진리가 부족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가 겪고 있는 것은 들음의 기갈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사람들은 그들의 눈과 귀를 닫고 마음을 강팍하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저는 바로 지금 우리가 미국이 전혀 겪어 보지 못한
가장 강한 폭풍 전야의 고요함을 경험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지난 1997년 4월 4일에 처음으로 타임스 스퀘어 교회에서 이러한 설교를 했습니다. 제가 설교하기 이틀 전날인 4월 2일 금요일 날 주가가 7000 포인트를 넘어 사상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뉴스 아나운서들과 잡지들은 큰소리 쳤습니다.

"미국은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실업률은 5% 미만으로 떨어졌으며 노동자들의 파업사태는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흑자는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사람들의 구매능력도 향상되었습니다. 동시에 금리 낮고 부동산 매매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희소식, 번영, 평화의 파도 꼭대기를 타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좋은 소식처럼 들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백성들이 "평화와 번영"을 외칠 때마다 갑작스러운 파멸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여러 해 동안 '폭풍의 전조가 인다'든지 '다가올 파멸'에 대해서 예언해 왔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한 일이라곤 당신의 말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려움을 주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실상은 당신이 이야기한 것과 반대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폭풍은커녕 우리는 경기의 호전, 기록적인 번영을 보고 있습니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는 어딜 봐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반응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베드로후서 3:3-4). 다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 폭풍이 어디 있지? 항상 그랬듯이 모든 일이 예전처럼 지속되고 있잖아!'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미국이 현재 행하는 것보다 경미한 죄를 지었던 모든 나라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미국보다 낙태로 많은 아이들을 죽인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의 땅은 이 아이들의 피로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낳은 한 아기의 생명을 살리는 것 보다 고래의 생명을 살리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혼외 임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십대 범죄는 자유 국가들 중 최고 입니다.

우리는 남성간, 여성간 동성애를 찬양해 왔습니다. 우리의 언론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용감하다"고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슬퍼하며 울어야 합니다! "엘런"이라는 유명한 여성이 TV에 출연하여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을 때 그녀는 영웅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전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울며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TV 뉴스는 플로리다주에서 동성애자인 여성이 반나체로 "여성간 동성애자(Lesbian) 자부심 주간"을 즐기는 모습을 방영했습니다. 약 3만으로 추산되는 여성이 일주일 내내 밤새도록 그 음탕한 축제와 술취함에 빠져들고자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공무원들은 그 축제를 칭찬했습니다. "여성 동성애자들이 이렇게 모이니까 멋지군요."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찢고 있었을 것입니다! 급진적인 동성애자들은 사회에 이렇게 외칩니다. "정면으로 마주치시오!" 그러나 그들이 진정 의미하는 바는 "정면으로 마주칩시다, 하나님!"인 것입니다.

미국은 뻔뻔스럽게도 하나님을 학교와 법정에서 내쫓았습니다. 심지어 요즘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대통령 선서와 모든 동전에서 없애 버리려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분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조차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미국인 중 5천만 명이 마리화나를 피웁니다. 그리고 수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헤로인, 코카인을 비롯한 독성 마약에 중독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학교는 신성모독과 불가지론의 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모든 도덕적 기준을 강탈당했으며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을 차단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더 폭력적이고 반항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소돔뿐만 아니라 노아의 세대도 멸하셨습니다. 모두가 우리보다는 경미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가혹한 심판을 받더라도 우리는 목숨을 건지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뻔뻔스러운 것입니까.


미국은 머지 않아 갑작스러운
재난의 소식을 듣고 깨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폭풍이 곧 우리에게 닥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형벌이 어떻게 하루 밤새 일어나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 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끼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또 악인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시편 75:8, 10).

계시록에서는 이 잔을 "진노의 잔"(계시록 14:10)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 잔은 하나님의 분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죄악의 잔이 흘러 넘치고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그 모든 우리의 죄악은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당신은 그렇게 사람들을 놀라게 해야 하죠? 왜 부유할 때 그것을 누리면 안되죠? 당신도 특별히 뉴욕과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좋은 일들을 보고 기뻐해야죠. 월트 디즈니사가 이곳으로 이전해왔고 한때는 아주 누추했던 42번가를 차지했어요. 그리고 모든 더러운 성인용품 가게들이 다 없어졌구요. 타임스 스퀘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가족중심적으로 변했어요. 당신이 예견한 것과 같은 폭동이나 수천발의 불기둥 같은 것은 이곳에서 일어날 수 없어요. 목사님, 좀 편안히 생각하시고 즐기세요!"

아닙니다. 미키 마우스가 다가올 폭풍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사실 디즈니사는 세계에서 가장 타락한 미디어사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디즈니가 만든 영화는 동성애, 폭력, 마술로 가득합니다. 그런 사업이 바로 이 땅에 하나님께서 폭풍을 일으키시는 원인입니다. 그리고 그 폭풍은 곧 닥칠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미국의 평화로운 잠을 깨우는 갑작스런 뉴스를 듣던 때가 생각납니다. 저희 가족은 어느 아름답고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유유히 저의 아버지께서 설교하실 교회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잠시 차를 멈추었을 때 라디오에서 갑자기 뉴스속보가 흘러나왔습니다. "잠시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뉴스속보를 알려드립니다. 일본이 방금 진주만을 공습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때 저의 아버지의 얼굴표정을 기억합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그 표정 말입니다.

그날 저녁 교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당황해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그들은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어떻게 우리 나라가 갑자기 폭격을 당할 수 있죠?" 그 다음날부터 우리는 "등화관제"를 실시했습니다. 모든 집과 학교의 창문을 가려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갑작스런 폭격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폭풍이 닥칠 때는 그렇게 갑작스러울 것입니다. 마치 밤중에 도적이 오는 것 같아서 거대한 혼란과 불신을 야기할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오라 그래! 재난이 닥친다 해도 나는 맞닥뜨릴 거야. 어쨌든 간에 나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니까. 나는 준비하고 있을 거야. 그래서 난 걱정할 필요가 없어. 예수님께서 끝까지 나를 도우실 거야."

제가 질문을 하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크게 외치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경고하기를 원하십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구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세상의 환심을 사려했던 우리의 모든 시도들이 주께 범죄한 것임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이 예수님만 바라보기를, 우리가 하늘의 것만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것들만이 다가올 폭풍 속에서도 살아 남을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께 다가올 폭풍 속의
유일한 소망을 안겨드리겠습니다.


죽으심과 부활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닥쳐올 엄청난 폭풍의 정면을 응시하셨습니다. 주님은 바로 앞에 다가올 것이 무엇인지를 보셨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이 강력한 군대에 의해 포위되어 성전이 파괴되고 성 전체가 완전히 불타 없어지며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침략군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광경이었습니다. 모든 사회가 소멸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꾸준히 예루살렘 사회를 향하여 경고와 예언과 눈물을 뿌리셨습니다. 눈앞에 닥쳐오고 있는 것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란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태복음 24:21-22).

잠시 생각해 보신다면 예수님의 시대가 바로 우리의 시대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평화, 고요, 풍요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뛰어 놉니다. 어느 곳에도 심판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계셨던 사회를 독사의 세대로 묘사하셨습니다. 과부의 돈을 빼앗은 제사장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 간음하는 자들,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자들, 장사꾼들로 가득한 부패한 교회, 양의 탈을 쓴 이리들로 가득한 사역, 거짓 고소인들, 거짓말하는 자들, 사기꾼들, 위선자들,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 음란한 자들, 타락한 아이들… 주님은 경고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적군에 의해 포위당할 것이다. 지금, 너희들의 마음을 준비하라. 폭풍이 다가오고 있음이니라!”

제가 처음 이 메시지를 준비했을 때, 저는 불안한 감에 사로 잡혔습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시대 형편없는 교회의 상태와 사단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속이기 위해 얼마나 교묘한 악을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자기의 필요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의 필요, 나의 문제, 나의 과거, 나의 미래, 나의 부모님이 어떻게 나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어떻게 내가 다니던 교회가 나에게 해를 입혔는지, 어떻게 내 친구가 나를 져버렸는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죽어가고 있는 세상을 위해 울지 않고 있었습니다!

잠시 동안 정말로 이러한 사실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령께서 우리 주님께서 다가오는 폭풍을 마주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셨는지를 내게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기록했습니다.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한일서 4:17) 단순하게도 우리는 모든 것에 있어서 예수님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를 지탱해 주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풀이 죽거나 절망적인 모습을 보이셨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주님은 당황하거나 실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다가올 모든 것을 보셨음에도 예수님은 최종결과를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지옥의 문이 하나님의 백성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다윗은 다가올 폭풍을 직면한 예수님의 태도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다윗은 그리스도에 관해서 예언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사도행전 2:25). 이 글의 문자적인 의미는 "나는 항상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주님의 임재 가운데 거했습니다"입니다. 다윗은 예수님을 인용하여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26절).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를 면전에 모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아버지와만 보낼 수 있는 비밀스런 장소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시작하실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아버지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확신으로 가득찬 후였습니다.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 세상 아무 것도 나를 움직일 수 없도다!" 여기서 "움직이다"는 뜻의 희랍어는 "흔들다, 교란하다, 방해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어떤 문제나, 악이나, 닥쳐올 사건이나 나를 쓰러뜨리거나 나의 확신을 흔들 수 없다. 나의 아버지께서 완전히 주관하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앞으로 폭풍을 직면해야 한다면, 아무 것도 우리의 영혼을 거스리지 못하도록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유일한 방법은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임재 가운데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만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무릎을 꿇고 주님께서 우리의 우편에 계시다는 사실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들이 보는 어떤 것에든지 요동하거나 흔들리지 말라. 너의 눈을 내게만 고정시키라. 그러면 너희의 기쁨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이것을 입증하셨습니다.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사도행전 2:28).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나는 마지막 시대에 너희들이 겪게 될 모든 것을 이미 맛보았다. 나는 다가올 폭풍을 보았기 때문에 너희들과 똑같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임재 가운데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나의 모든 근심을 없애셨다! 아버지께서 그 결국을 내게 보여주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임재 가운데 나는 모든 기쁨, 소망 그리고 내가 영원히 필요로 할 안식을 발견하였다. 내게는 평화와 기쁨이 있다. 내가 그분과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내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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